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이명박정부 시절 “한은도 정부”라는 말과 함께 취임했고, 그 자신이 입안했다고 하는 747정책(7% 성장, 소득 4만 달러, 경제 세계 7위)에 충실해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폈다.
이주열 총재도 최경환 부총리 취임 후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인 2014년 7월 이 총재와의 상견례 자리는 사실상 금리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자리로...
당시 김중수 전 총재가 등한시했던 공보라인을 강화하고자 하는 포석이라는게 지배적 인식이었다.
이후 2015년 발권국장을 거쳐 2017년부터 기획협력국장을 맡아왔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한은에 입행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박 국장이 (금융연수원 부원장으로 옮기기 위해) 지난달말 퇴임했다”면서도 “다만 공심위 절차가 있어...
모두 2002년 처음 시작해 전임 김중수 총재 당시까지만 해도 매월 열리다시피 했던 행사다. 이주열 총재가 취임한 2014년 4월 이후부터 횟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지난해엔 각각 4회와 3회로 줄었다. 한은은 이 총재가 3월말 퇴임 예정이었던데다 예상치 않은 연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은행장들이 검찰의 각종 혐의선상에 오르내리면서 간담회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저금리·고환율 정책인 747정책(7% 성장, 소득 4만 달러, 경제 세계 7위) 입안자임을 자처한 김중수 전 총재가 “한은도 정부다”라는 말과 함께 취임했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엔 “척하면 척”으로 대표되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언급에 현 이주열 총재가 화답해 왔었다. 한은법에 고용이 없더라도 ‘성장’에 방점을 둔 통화정책을 펴 온...
실제 김중수 전 총재 시절인 2013년 4월 4대3 동결이 이뤄지면서 김 전 총재가 큰 상처를 받은 바 있다. 그 다음달인 5월 김 전 총재 의지와는 달리 금리인하가 단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총재 추천 금통위원이었던 문우식 전 위원이 동결 소수의견을 내는 것으로 김 전 총재의 속내만 남기고 끝이 났다.
문제는 김중수 전 총재 재임 당시 한은은 이 잡지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으로 몰아세웠다는 데 있다. 2011년과 2012년 김 전 총재가 C등급을 받자 김 전 총재와 한은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듣보잡이다. 월간 잡지이고 대응할 가치도 없는 잡지”라고 대응한 바 있다.
2012년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설훈·윤호중·이낙연 의원은...
모두 2002년 처음 시작해 전임 김중수 총재 당시까지만 해도 매월 열리다시피 했다.
반면 이 총재가 처음 취임한 2014년 4월1일 이후 개최횟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금융협의회는 2015년부터, 경제동향간담회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분기에 한번 개최로 줄었다.
올 들어 1분기(1~3월)에는 총재 퇴임을 앞뒀었고, 또 연임 결정에 따른 청문회 준비를 이유로 열리지...
한국은행 총재는 김중수. 이주열 총재가 4년 임기를 꽉 채우고 4월 연임까지 한마당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4일 센트럴뱅크뉴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버젓이 한은 총재를 ‘Kim Choongsoo(김중수)’로 소개하고 있다. 그것도 오래된 것이 아닌 올해 5월1일자 업데이트 버전이다.
김 전 총재는 2010년 4월1일부터 2014년 3월31일까지 한은 총재를...
지난 4년은 직전 김중수 총재의 개혁을 되돌림하는 시간이었다. 김 전 총재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한은을 흔들어 놨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이 컸다는 게 한은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었다는 점에서 이 총재 스스로도 밝힌 ‘안정’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렇잖아도 보수적인 한은의 문화를 더 보수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시장에서도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총재에 대한 평이 워낙 나빴던 탓에 그의 취임을 ‘중수’가 가고 ‘상수’가 왔다고 평하기도 했었다. 다만 이 총재에 대한 수식어는 오래지 않아 ‘학생’으로 폄하됐다.
이 같은 평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의 실기(失機)가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다. 우선 그가 취임 일성(一聲)으로 강조했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이중식 신임 정책보좌관은 김중수 전 총재시절 승승장구했던 인물. 지난달 30일 이 총재의 마지막 정기인사에서 화합차원에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민 신임 정책보좌관 역시 금융시장국 등 주요요직을 거쳤던 인물이다.
후임 기재부 파견에는 황인선 전 국고증권실장이 유력하다. 현재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 심사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조사국장을 맡아왔던...
이 신임 정책보좌관은 이 총재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시절 발탁 인사를 통해 승승장구했던 인물. 전승철 부총재보와 퇴임한 서영경 부총재보, 유상대 국제협력국장, 신운 금융안정국장, 성병희 공보관 등 김 총재가 발탁한 독수리5남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에 따라 전 보를 빼고 이 신임 정책보좌관을 넣어 독수리5남매로 부르기도 했다. 이 총재 취임직후 미국과...
김중수(사진 왼쪽) 전 한국은행 총재(현 한림대 총장)가 모친상을 당한 가운데 이주열(사진 오른쪽) 현 한은 총재가 상가를 방문해 조문하면서 둘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일 김 전 총재의 모친은 9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상가가 꾸려진 가운데 김 전 총재는 공식적으로 부고도 내지 않았다. 발인날짜는 22일.
21일...
최근 알려진 대표적 사례는 전임 김중수 총재 재임시절인 2013년 5월이다. 직전월에 4대3의 표결 끝에 동결됐던 기준금리는 결국 5월에 당시 임승태 위원이 돌아서면서 인하로 결정됐다. 김 전 총재는 당시 동향보고회의를 전후로 임 위원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이 회의는 점심 무렵 끝난다. 이달처럼 수정경제전망이...
신운 신임 국장은 김중수 전 총재 시절 발탁인사를 통해 조사국장에 오른 인물. 다만 그가 주로 조사국에서 요직을 거쳤다는 점에서 금안국장 인선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한은 목표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정책부서 업무가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게 아니고 보완관계에 있다. 금안국 경력이 없어 부서장으로 적합하지...
전임 김중수 총재가 등한시했던 공보라인을 강화코자 한 포석이었으며 이후 그는 2015년 발권국장을 거쳐 2017년 현 기획협력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한은에 입행했다.
신 국장도 국방대학원 연수를 마치고 이 총재 취임 후 처음 생긴 정책보좌관을 거쳐 2015년 금융시장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 본인의 주특기라 할 수...
당시 김중수 총재는 의사록에서 “금리 결정에 있어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며 여섯 가지 동결 이유를 들었다.
역대 금통위 중에서 부총재가 소수의견을 낸 적도 2004년 11월 금리인하 당시 이성태 부총재가 유일하다. 다만 실제적으로는 당시 박승 총재도 반대했다. 당시 사건은 ‘금통위원들의 반란’으로 지금까지도 언급되고 있다.
한은 총재 추천 금통위원...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명박 정부가 앉힌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총재 취임 전부터 “한은도 정부”라고 언급했고,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정통 한은맨 출신 이주열 현 총재도 지난해 “나도 이 정부(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외부의 주장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앞선 보고서의 평가와는 달리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계속해...
당시 회동은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와 당시 박근혜 정부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점에서 이 총재 취임을 맞아 기재부와 한은 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됐다.
반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2014년 중반 이후 기재부와 한은 간 관계는 급격히 기재부 쪽으로 기운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양 기관 수장은...
당시 회동은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와 당시 박근혜 정부가 껄끄러운 관계였었다는 점에서 이 총재 취임을 맞아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현 부총리가 물러나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기재부와 한은간 관계는 급격히 기울었다. 최 부총리 취임직후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양 기관 수장 회동은 사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