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통업계는 불황에 따른 경영 환경 악화 때문에 실로 치열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백화점, 대형마트, 식품, 패션, 화장품 업계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라면 상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갑을(甲乙) 관계’ 논란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또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은 수산물 매출 급감 등 식탁의 지형도를 바꿔 놓았다.
이 밖에도 불황으로 지갑을 닫았던 소비자들은 일부 검증된 제품에 대해 아끼지 않고 구매하는 ‘힐링’ 트렌드가 두드러졌다. 프리미엄 패딩 열풍과 아웃렛 인기가 대표적이다.
◇불황·슈퍼 갑·방사능 공포에 찬바람 ‘쌩쌩’= 올해 국내 유통업계는 경기 불황으로 매출 부진에 시달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업계는 1993년 첫 등장 이래 사상 최저인 1.5%의 성장률을 보이며 45조1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상 역신장한 것과 다름없다는 게 업계 측 분석이다.
백화점 역시 불황의 여파로, IMF 이후 가장 낮은 매출 성장률(2.9%)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 업계는 고객이 온라인몰·아웃렛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타격을 입었다.
패션·뷰티업계도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화장품 1위 업체 아모레퍼시픽이 부진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충격을 안겼다.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연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한 7928억원과 5.3% 줄어든 856억원이다.
갑을 논란도 유통가를 뜨겁게 달궜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제품을 강제 할당하는 ‘밀어내기’ 논란에 시달렸다. 김웅 대표가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 영업직원이 대리점 운영 포기를 종용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논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밖에 일본 방사능 유출 공포는 수산물 매출 감소로 이어지며 현재까지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롯데마트의 수산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5% 감소했고, 고등어(-37.1%), 갈치(-25.5%) 등 국내산 어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소고기와 닭고기, 계란은 각각 38.6%, 20.8%, 15.6% 상승하면서 식탁 지형도가 바뀌었다.
이경희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유통업계는 계속된 경기불황과 각종 논란으로 2013년 저점을 찍었다”고 진단했다.
◇지친 마음 ‘프리미엄’으로… 고급패딩·아웃렛 열풍=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지갇은 굳게 닫혔지만, 프리미엄 제품과 원스톱 쇼핑(여러가지 상품을 한 장소에서 구매하는 것)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올해 패션업계가 극심한 침체에 시달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몽클레르’를 비롯해 ‘캐나다구스’ 등 수백만원대의 수입 브랜드 패딩은 불티나게 팔렸다.
롯데백화점을 비롯해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는 현재 인기상품이 조기 품절돼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롯데백화점 측은 “일부 인기 상품은 입고일에 맞춰 사전 예약판매까지 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구스’는 올해 유통량이 3배 가까이 늘었음에도 완판(완전판매) 행진을 거듭했다. 몽클레르도 예년에 비해 물량을 두 배 늘렸지만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아웃렛의 인기도 여전했다. 롯데의 아웃렛 매출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연간 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2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측됐다. 매출 1조원에 이를 때까지 걸린 시간이 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같은 아웃렛 인기는 원스톱 쇼핑에 기인한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장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불황으로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힐링 트렌드가 두드러졌고, 아웃렛을 중심으로 원스톱 쇼핑이 강세를 보였다”며 “또 프리미엄 패딩 열풍이 단적으로 증명하듯 불황속에도 품질을 검증받은 일부 제품은 품귀 현상을 빚었고,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어느 때보다 중요시된 한 해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