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이혼과 사람간의 쾌적거리

입력 2013-12-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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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KDB산업은행 부장

호저(豪猪)라는 동물이 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사는 멧돼지의 한 종류이다. 몸에 길고 부드러운 털이 있다. 그리고 등과 배, 옆구리, 꼬리에 강하고 뻣뻣한 가시가 있는데 가시가 있는 꼬리로 공격자를 쳐서 자신을 방어한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두 마리 호저는 서로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누려고 한다. 그런데 너무 힘껏 껴안으면 몸에 있는 가시로 서로를 찌르게 된다. 놀라서 몸을 떼면 추위에 떨어야 한다. 호저들은 껴안았다 떨어졌다 하는 시행착오를 수없이 되풀이한다. 드디어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 따스하게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게 된다. ‘쾌적 거리’이다.

우리는 서로 너무 가까이 있으면 불편을 느낀다. 그런데 그 거리가 사람마다 좀 다르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상대방과 40~50cm의 거리에서 친밀감을 느끼는 반면 아랍인들은 그 거리가 20~30cm라고 한다. 아랍인은 다가가려고 하고 미국인은 물러나려고 한다. 이를 두고 미국인은 아랍인이 공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랍인은 미국인이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결혼청첩은 줄어들고 이혼소식이 이어진다. 결혼건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이혼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이혼율이 미국 스웨덴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단다. 이혼 뒤 혼자 사는, 이른바 ‘돌싱족’은 1980년 7만명에서 2005년 9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다. 부끄러운 이혼이 당당한 이혼이 된 것이다. 가장 많은 이혼의 원인은 소위 ‘성격 차이’, 학문적 표현으로 말하면 ‘여성의식의 성장’이란다. 성장한 여성의 의식에 남성이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여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였는데 남성의 의식은 변하지 않고 기존의 가치관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좁은 공간을 공유할 때는 쾌적 거리가 침해돼 불쾌감이 생긴다. 이게 누적되거나 심해지면 위기가 발생한다. 결혼은 평생 동안 이런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부부가 함께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비좁은 공간에서 뛰쳐나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를 찌를 수밖에 없는 호저(豪猪)처럼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야 한다.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쾌적 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이 매서운 ‘경제 겨울’을 잘 지나가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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