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위스키의 눈물

입력 2013-09-13 11:0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그들에게 새로 매겨진 세금은 너무 가혹했다. 스코틀랜드를 합병시킨 영국 정부가 위스키에 비싼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북부 하이랜드(Highland)의 산속으로 들어가 달빛 아래서 위스키를 밀조하기 시작했다. ‘달빛치기(Moon Shiner)’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눈물을 흘리면서 산으로 올라갔지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산속에서 만든 술이 넘쳐나자 이들은 그 당시 많이 사용하던 셰리와인 통에 술을 보관했다. 나중에 술을 팔기 위해 오크통을 열자 투명했던 위스키는 호박색을 띈 오크향 짙은, 부드러운 맛의 술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카치위스키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렇게 우연한 과정을 거친 술은 스카치위스키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스카치위스키협회(SWA)는 반드시 오크통에 3년 이상 숙성해야 스카치위스키로 인정한다는 법규까지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스카치위스키는 고급스러운 술이라기보다는 역설적이게도 밤 문화를 대표하는 술이었다.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로얄 살루트, 조금 더 대중적인 윈저와 임페리얼 등. 지금은 소맥(소주+맥주)이 폭탄주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지만, 198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도 폭탄주의 주인공은 스카치위스키였다.

사회 부유층과 여론 주도층이 주도했던 강남의 밤문화에는 이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스카치위스키업체들도 이들의 입맛을 잡으려고 사활을 걸 정도로 1990년대 말은 파는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스카치위스키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될 정도였다.

2013년 대한민국. 스카치위스키를 둘러싼 풍경은 그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

올해 1분기 위스키 판매는 경기불황과 달라진 음주문화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나 감소했다. 2009년을 기점으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2009년 -10.1%, 2010년 -1.4%, 2011년 -4.8%로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올해도 이변이 없는 한 5년 연속 하락세를 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국내 위스키시장이 여의치 않자 임페리얼을 생산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이천공장의 매각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보다 완제품을 본사에서 수입하는 것이 훨씬 돈이 덜 든다는 얘기다.

관세청과 역대 최대 규모인 4000억원대의 관세취소 소송을 벌이고 있는 디아지오코리아도 스카치위스키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남을 가진 조길수 대표이사는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금에 울던 스카치위스키는 불황과 달라진 음주문화에다 세금 때문에 울상이다. 세금 문제는 법원 결정에 따라 납부하면 그만이지만 음주문화 변화에 따른 소비 위축은 약이 없다. 300년 전 산속으로 들어가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었던 스카치위스키. 최근 업체들은 블랙 위스키를 출시하고,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에게 예상 밖의 행운이 찾아올 수 있을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역직구 날개’ 펼친 K커머스…정부 ‘직구 정책’에 꺾이나 [지금은 K역직구 골든타임]
  • 김호중 '음주 뺑소니 혐의' 결정적 증거…소속사 본부장 "메모리 카드 삼켰다"
  • '동네북'된 간편결제…규제묶인 카드사 vs 자유로운 빅테크 [카드·캐피털 수난시대 下]
  • [종합] 뉴욕증시, 엔비디아 실적 앞두고 상승...S&P500·나스닥 또 사상 최고
  • 비트코인, 이더리움 ETF 승인 여부에 '뒤숭숭'…도지·페페 등 밈코인 여전히 강세 [Bit코인]
  • 외국인이냐 한국인이냐…'캡틴' 손흥민이 생각하는 국대 감독은?
  • ‘인기 있는 K팝스타’는 여자가 너무 쉬웠다…BBC가 알린 ‘버닝썬’ 실체 [해시태그]
  • 서울시민이 뽑은 랜드마크 1위는 '한강'…외국인은 '여기' [데이터클립]
  • 오늘의 상승종목

  • 05.22 10:49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6,423,000
    • -0.57%
    • 이더리움
    • 5,201,000
    • +3.42%
    • 비트코인 캐시
    • 707,000
    • -0.7%
    • 리플
    • 736
    • +0.41%
    • 솔라나
    • 245,300
    • -2.93%
    • 에이다
    • 679
    • -0.59%
    • 이오스
    • 1,189
    • +2.68%
    • 트론
    • 170
    • +0%
    • 스텔라루멘
    • 154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94,350
    • -1.72%
    • 체인링크
    • 23,170
    • -0.52%
    • 샌드박스
    • 643
    • +0.7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