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배국남 부국장 겸 문화부장 "노량진 컵밥과 청담동 앨리스"

입력 2013-01-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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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찾아온 매서운 겨울 한파가 몰아치던 1월 초. 서울 노량진 노점에 서서 컵 밥을 허겁지겁 먹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추운 날씨에 급하게 먹으면 체할 텐데 라는 걱정과 함께 젊음을 담보 잡힌 채 내일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나마 격려 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내 우울한 우려와 절망이 엄습한다. 우려와 절망의 진원지는 지난 27일 끝난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부와 1% 최상류층의 견고한 공간적 기호가 된 서울 청담동, 그곳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공부도 치열한 노력도 부질없다. 비청담동 여자가 청담동에 진입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담동 남자를 잡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때 신분 상승의 역할을 했던 교육과 치열한 노력마저 이제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잘 드러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청담동에 진입하지 못한다.

픽션이지만 이 드라마에는 2013년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이 짙게 배어 있다. “난 세상이 제일 힘들었다. 난 세상을 믿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는 세상은 없었다. 우리한테 그런 세상(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하는 세상)은 없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세상을 살아본 적 없다”는 여자 주인공의 절규는 TV 화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TV 화면 너머의 현실 속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렇게 절규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날아드는 소리는 “루저(패배자)같은 소리 하지 마라”는 것이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의 대사처럼. 부와 학력의 세습을 바탕으로 1%만의 리그(청담동)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 사람들이 99%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절규를 “루저 같은 소리”로 간단하게 치부해 버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부의 화려한 잔치를 벌여나간다. “내가 벌어서 쓰는데 웬 말이 많냐”며 하루 피부 관리를 위해 720만원을 쓰고 와인 값으로 350만원을 내고 휴대폰 케이스 튜닝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는 ‘청담동 앨리스녀’김모씨(tvN ‘화성인 X파일’11일방송)처럼 말이다.

1대 99라는 수치로 드러난 극단적인 양극화의 우리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은 꿈마저 꿀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서 고단한 삶을 버티어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드라마처럼 현실에서도 이제 청담동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담동 남자를 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청담동 1%의 화려한 부의 현시 앞에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이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생각 한다’는 끔찍한 조사결과도 나왔다. 흥사단 윤리연구센터가 지난달 7일부터 10일까지 수도권 초·중·고 학생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억원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응답한 고등학생은 무려 44%에 달했고 중학생 28%, 초등학생 중에서도 12%나 같은 답을 했다. ‘청담동’이라는 화려한 공간의 광휘가 찬연할수록 ‘비청담동’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노력과 땀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온전히 지탱하지 못한다. 청담동과 비청담동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사회는 불안해지고 절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차가운 날씨에 컵 밥을 먹으며 내일의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을 안겨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 23일 컵 밥을 팔던 노점상이 구청에 의해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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