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맨 '또다른 도전']"제 2의 인생은 하고 싶은 일 해야"

입력 2012-12-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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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성공스토리

▲SK에너지 울산공장장 출신의 박종훈(사진 오른쪽)씨는 ‘돌아온 공장장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후진양성을, 중소기업에게는 컨설팅 업무를 지원한다. 사진은 울산 ‘전문경영인사지원센터’ 양해각서 체결 모습.
“요즘은 인생에 있어서 직업을 세 가지쯤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 직업은 ‘인도여행 전문가’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그의 어투는 거침 없지만 절제돼 있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듣는 이를 자신의 인생으로 끌어들였다. 인생 2막을 열며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그는 국내 굴지의 광고대행사 임원을 지냈던 오시환(58)씨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1980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했다. 그룹의 전략을 총괄하는 기획부서에서 광고와 그룹CI 등을 제작했다. 5년여 동안 그룹에서 광고와 마케팅 등 전략 수립 과정을 익혔다. 그리고 이 감각을 앞세워 굴지의 광고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코래드와 거손, 광연재PR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굵직한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근무하기도 했다. 흔히 ‘글 꽤나 쓸 줄 아는 인재’만 모인다는 곳이었다.

이후 대우전자와 대우자동차, 경동산업, 한국야쿠르트, 보령제약, 삼진제약, 기아자동차, 에스콰이어 등의 굵직한 광고 업무를 도맡았다. 천부적인 기질을 앞세운 그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두 번째 인생을 위해 식칼을 든 남자 = 그렇게 2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내 광고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인정받기도 했다. 광고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도 누렸다.

그 무렵, 젊고 감각이 필요한 광고업계에서 그는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더 이상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광고업계 언저리에 남아 후배들을 괴롭히는 선배가 되기 싫었다. 주저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두 번째 인생은 미국에서 출발했다. 플로리다와 뉴욕 등을 거치며 꼬박 3년 동안 주방보조인 ‘쿡 헬퍼’ 수련을 시작했다.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언젠가는…’이라는 꿈은 그렇게 펼쳐졌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이국의 동료들과 몸을 부대끼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는 이 무렵 후회와 번민에서 두 번째 삶의 ‘새로운 방식’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3년여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미국에서의 경험’을 글로 남겼다. 은퇴를 앞둔 중년의 바이블로 통했던 ‘마흔여덟에 식칼을 든 男子’가 바로 그의 저서다. 책에는 낯선 땅에서 겪었던 구직의 어려움, 동네 중국집에서의 일자리, 반나절 만에 해고 당한 경험 등이 담겨 있다.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 계동 현대사옥 인근에 바다요리 전문점도 열었다. 느지막이 익힌 손맛을 통해 음식만행(卍行)을 시작한 셈이다. 이직이나 전직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펼친 그는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뚜렷한 충고를 남긴다.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할 때는 정말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해요. 두 번째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갈수록 밑바닥 기초부터 처절하게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전백패합니다."

그는 요즘 서울 바다요리 전문점을 후배에게 맡기고 경북 봉화로 내려갔다. 농사를 시작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 중이다. 부지런히 이제 막 뛰어든 농사일을 익히고 있다.

그에게 “인도여행 전문가는 포기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서슴없이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의 두 번째 인생 역시 세 번째를 위한 준비 과정인 셈이다.

▲대기업을 시작으로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 임원을 거친 오시환 씨는 은퇴후 인생 2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은퇴한 공장장들이 되돌아온다 = 오씨가 처음으로 두 번째 인생을 준비했던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 ‘은퇴후 인생 2막’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다. 오로지 스스로 알아서, 그리고 눈치껏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50대 초반 임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저 앉기에는 여력이 충분한 이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은퇴후 삶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나서 은퇴후 삶을 위한 조력자를 자청한 것도 이때였다.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 SK에너지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37년간 근무했던 박종훈(71·울산대 초빙교수)씨도 마찬가지다. 2004년 SK에너지 울산공장 총괄공장장을 끝으로 퇴직했지만 오랜 경험을 앞세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강단에 올라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중소기업에게는 현장 경험을 살린 생생한 조언도 전하고 있다. 나아가 외국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지역산업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박씨는 “3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이 사장되지 않고 사회에 환원되는 것만 해도 큰 보람이다”며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 2모작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공언한다.

2009년 박 교수는 전국 최초로 ‘돌아온 공장장들의 모임’을 뜻하는 ‘돌공모’라는 공식 모임을 만들고 회장이 됐다. 공돌모 회원 중 일부는 박종훈씨처럼 대학 강단에서 생생한 현장 경험을 살려 후진을 양성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 컨설팅 역할을 도맡고 있다.

업종도 처음에는 석유화학이 주축이었으나 현재는 조선, 자동차 등 다양한 업종에서 근무했던 퇴직 임원들이 동참하고 있다.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울산시는 울산테크노파크 안에 ‘전문경력 인사지원센터(NCN)’라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다.

울산대 역시 산업체 은퇴자들이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대학은 산업체 은퇴자들에게 산업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는 첫 번째 은퇴 이후, 두 번째 삶을 위한 공감대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본격적인 은퇴 1세대의 역할과 활동 영역에 따라 이를 뒤따르는 후진들의 자리도 달라진다. 우리 사회의 인생 제2막이 조금씩 무대를 넓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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