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사라진 것은…

입력 2012-08-0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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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과 도포를 입고 멋들어진 수염까지 붙였다고 그 장난기가 어디 가겠나. 차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근성을 가진 배우다. 근성의 원천은 남을 웃기는데 도가 트인 그의 선천적 재능일 것이다. 결국 차태현 표 코미디 영화의 방향타는 순간적 애드리브가 갖는 의외성과 일치한다. 좀 더 정확하자면 홈런 한 방보단 단타 위주의 나눠 치기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전작 중 최고 흥행작 ‘과속스캔들’이 딱 그랬다. 잔잔한 웃음의 슬랩스틱 개그와 이따금 터지는 말장난의 여운이 가늘고 길지만 힘 있게 러닝타임을 돌린다.

8일 개봉을 앞둔 사극 코미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자. ‘사극 코미디는 흥행이 어렵다’란 충무로 공식을 깨트리기 위해 차태현이 나섰다. 오지호와 민효린 등 다소 생경한 조합이 차태현 표 코미디의 한 축인 의외성을 가늠케 한다. 여기에 성동일 고창석 신정근 등 명품 조연 3인방이 합세했다. 이건 ‘안 봐도 웃어야 하는 비디오’다. 그런데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조선시대 황금보다 귀하게 여겨졌던 얼음을 털기 위해 모인 도둑들의 발랄한 활약상이다. 최근 흥행 질주 중인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연상된다. ‘케이퍼 무비’란 장르적 시각에서 두 영화는 연결점을 가진다.

‘도둑들’의 경우 음모와 배신이란 스토리의 동력이 확연히 존재한다. ‘바람사’ 역시 얼음을 훔치기 위한 과정을 사극이란 배경과 버무리며 독특한 상황 코미디로 변주됐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익숙함의 연속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케이퍼 무비’에서 익숙함은 완벽한 작전 실패다. ‘바람사’의 핵심은 얼음을 턴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그렇다면 ‘턴다’는 과정에 주목해서 스토리를 풀어가야 마땅하다.

초반 덕무가 얼음을 털기 위해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다. 영-정조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연계된 스토리는 충실한 팩션의 외피를 두른 듯 꽤 탄탄한 코미디의 초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사건 발생 뒤 덕무와 그 패거리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하는 과정부터 급격하게 힘이 빠져버린다. 얼음을 탈취하기 위해 벌어지는 덕무와 패거리들의 ‘범죄’ 모의 과정은 당연히 기발함의 연속이어야 한다. 서빙고란 독특한 장소에 보관된 얼음을 턴다는 설정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선 기본 전제다. 얼음을 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조건이 필요하면, 이런 모든 상황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풍겨지는 코미디의 냄새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떨어진다. 기본 전개가 너무 예상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엉뚱한 부분에 힘이 집중되니 메인 시퀀스를 제외한 나머지 에피소드의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우의정의 서자로 태어난 덕무의 스토리, 초반 덕무와 앙상블을 이루는 배우 이문식의 역할, 후반부에 툭 튀어나온 ‘정가’(천보근)의 비밀 등이 생뚱맞다.

물론 이 모든 스토리가 기시감으로 인해 동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감독은 흐름의 속도로 그 힘을 보충하려 했지만 여러 캐릭터의 설명에만 집중했고, 결국 가위로 끊어 놓은 듯 뚝뚝 끊기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얼음을 턴다’는 메인 플롯에 맞춰 그린 여러 CG를 통해 제작비 투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할리우드 3D 영화에 시각이 맞춰진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의 한계도 모자랄 정도다. 주인공 덕무가 매번 쏟아내는 ‘오케이’를 줄 수 있을지가 의문스럽다.

차태현의 코믹스러움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점은 너무 아쉽다. 존재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충무로 명품 조연들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러닝타임 내내 겉도는 인상이 강하다.

‘바람사’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케이퍼 무비’의 외피와 역사적 사실을 섞어낸 독특한 팩션 무비의 얼굴이다. 배우들의 캐스팅도 꽤 그럴듯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호텔집 자장면도 동네 구멍가게 자장면도 맛은 똑같이 자장면이다.

‘바람사’의 최대 약점. 이미 봤음직한 익숙함의 연속이다. 독특함의 장점을 일반화의 단점으로 변주한 좋지 않은 선례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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