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집행으로 사망 단정 어려워…재조사 필요”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희생자 진실규명 사건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기존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한 것은 적법하지만, 재조사 없이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한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양순주 부장판사)는 최근 고 백락정의 조카인 백남식 씨가 진화위를 상대로 제기한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 소송에서 백락정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 각하 결정은 취소하되, 진실규명 취소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백남식 씨는 2020년 12월 진화위에 백락정과 그의 형 백락용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등 집단살해 사건과 관련해 행방불명됐다는 취지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화위는 2023년 11월 백락용이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 사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됐고, 백락정 역시 비슷한 시기 희생됐다고 판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후 백남식 씨는 2024년 1월 진실규명 결정에 포함된 ‘백락용이 노동당원으로 활약하다 처형됐다’, ‘백락정이 악질부역자로 처형됐다’는 표현이 허위라며 삭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진화위는 2024년 8월 백락정이 1951년 1월 6일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판결문을 발견해 재조사를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백락정이 사형 판결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사망출소한 사실이 확인돼 사건이 과거사정리법상 진실규명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진실규명 결정 중 백락정 부분을 취소하고 진실규명 신청도 각하했다.
이에 백남식 씨는 진화위가 이미 내린 진실규명 결정에는 기속력이 있어 이를 취소할 수 없고, 고등군법회의 판결은 국방경비법에 근거한 재판으로 법관으로 구성된 적법한 법원 판결이 아니며 상소도 불가능해 과거사정리법상 ‘확정판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의 취소를 구했다.

재판부는 기존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한 부분은 적법하지만, 신청까지 각하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정 취소와 관련해 “추가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백락정은 1951년 1월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이고, 사망 시기와 장소, 사망 원인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된 이상 종전 결정을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한 처분에 대해서는 위법하다고 봤다. 고등군법회의 판결이 국방경비법에 근거해 설치된 군법회의에서 내려진 점 등을 고려할 때 판결의 성립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판결 이유가 기재돼 있지 않고 교도소 재소자 명부에는 ‘사형출소’가 아닌 ‘사망출소’로 기록돼 있으며, 사형 집행을 확인할 수 있는 집행원부나 법무부 사형인 명단에도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백락정이 판결 집행으로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가족들이 1950년 7월 초 백락정이 지서에 감금된 채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점, 1950년 전후 좌익 활동 혐의에 대한 오인으로 민간인이 즉결처형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례가 다수 존재했던 역사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진실규명 신청 내용이 그 자체로 명백히 허위이거나 이유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의 사망 원인과 시기, 가해자, 불법성 등에 대한 재조사 없이 곧바로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