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교사인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0월, 청천벽력 같은 담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담도암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고작 7개월. 내년 이맘때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나마 다행은 한국인에게 특히 효과가 좋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이 국내에 허가돼 있었단 점이다. 진단 바로 다음 날부터 치료에 들어간 A씨는 종양 크기가 줄어들고 암 수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등 담당 의사가 놀랄 만큼 상태가 호전돼 사회생활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비용이다. 연간 ‘억’이 넘는 약값 때문에 A씨와 가족들은 현재 사는 집을 내놓고 80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실손보험으로도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가정 소득의 대부분이 자신의 치료비로 들어가다 보니, 치료를 받을 때마다 죄책감마저 느낀다. 부부의 노후 자금과 아들의 학비…치료에만 집중해도 벅찬 A씨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A씨처럼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돼 수술이 어려운 담도암 환자들의 선택지는 항암 치료뿐이다. 그러나 폐암이나 유방암처럼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신약이 꾸준히 허가된 암종들과 달리 담도암은 지난 10여 년간 항암화학요법(젬시타빈+시스플라틴)에만 의존해 왔다. 환자들은 담도암으로 인한 고통과 함께 항암화학요법에 따른 부작용까지 함께 겪어야 한다.
담도암의 대표적인 증상은 황달, 체중 감소, 피로, 식욕부진 등이지만 초기에는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다. 소화불량이나 복부팽만 등 자각증상이 뚜렷하게 드러났을 때 내원하면 70~80%가 종양이 다른 부위로 전이된 말기(4기) 상태에서 진단된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이지만, 수술 당시 암이 진행된 정도가 심할수록 재발 위험이 크다. 실제로 원격전이(암이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원발 부위에서 떨어진 다른 장기로 퍼지는 것) 단계 담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침묵의 살인자’로 알려진 췌장암과 유사한 4.1%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에는 담도암의 1차 치료를 위해 항암화학요법 외에도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이 허가돼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를 기존 항암화학요법 함께 쓰는 치료법이다.
눈여겨볼 점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이 한국인 연구진 주도의 글로벌 임상 3상(TOPAZ-1) 연구에서 기존 표준치료 대비 전체생존율을 약 2배 향상시키는 효능을 입증했단 것이다. 젬시타빈+시스플라틴이 2010년 표준치료로 확립된 이후 전체생존율을 개선한 최초의 성과다.
한국인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하위 분석 결과는 더욱 고무적이다. 기존 치료에서 24개월 시점에 14.1%, 36개월 시점에 8.8%에 불과했던 전체생존율이 면역항암제를 쓰면 38.5%, 21.0%로 대폭 증가했다. 담도암이란 불모지에도 장기 생존의 희망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 연구진이 주도한 임상에서 한국인들에게 다른 나라 환자들보다 뛰어난 효능을 확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쓰이는 못하는 것이다. 비급여로 드는 비용은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 연간 1억5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현실에 다수의 담도암 환자와 가족들은 고액의 의료비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거나 치료 포기에 이르는 ‘메디컬 푸어’ 상황에 처해 있다.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으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밝힌 담도암 환자 B씨는 “가족들과 함께 오래 살고 싶지만, 그걸 바랄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라며 “급여되는 약이 있는 암에 걸린 환자가 부러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일례로 폐암은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10개 이상의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권에 들어왔다. 그 결과 2011~2015년 27.7%였던 폐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최근 40.6%까지 증가한 상태다.
반면 담도암은 해당 기간은 물론 2025년까지도 급여 적용된 신약이 전혀 없고, 발병률 높은 10대 암종 중에선 신약 허가에도 급여가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암이다. 2022년 11월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허가 후 2년 반 가까이 절차가 진행 중으로, 지난해 11월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 기준이 설정된 후 약제의 비용 효과성을 분석하는 경제성 평가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와 대조적으로 해외에서는 담도암의 생존율 향상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 영국은 허가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에 급여를 적용했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 급여 절차가 까다롭다고 알려진 대만에서도 이미 급여가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