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 술에 마약 넣었어요”…법정 속 하찮은 변명들 [서초동MSG]

입력 2024-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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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자신을 방어하는 본능이 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거나 그 과정에서 변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정에서 궁지에 몰린 피고인들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이런 방어기제 때문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변명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변명이 있다.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에 따라 간통죄는 없어졌지만, 그전에는 간통죄를 두고 다투는 사건이 무수했다.

간통죄는 증거 수집이 어려워 입증이 어렵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죄의 수가 불륜 행위마다 성립되고, 구성 요건도 성교로만 한정된다. ‘유사’ 성행위로는 간통죄를 주장할 수 없다. 그래서 숙박업소를 급습하거나 침구류에 남겨진 체액을 DNA 감정으로 입증하는 방법이 통용됐다.

그래도 유죄가 선고될 경우 형이 낮지 않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항변이 난무하곤 했다.

한 성인 남녀가 늦은 시간에 여관에 함께 투숙했다. 이들이 객실로 들어간 지 1시간 30분 가량 지난 시간, 증거 수집을 위해 옆방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이들이 머물던 객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속옷만 겨우 갖춰 입은 상태였고 방 바닥에는 구겨진 화장지가 여러 장 널려 있었다. 이 남녀는 “성교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 판단을 내렸다.

괜한 변명으로 오히려 형량이 늘기도 한다. 한 사건에서 증거물로 수집된 화장지에서 정액반응이 나타나자 여성 피고인이 “생리가 끝날 무렵이어서 모텔의 화장지를 조금 떼어 속옷에 깔았는데 이 일이 있기 전 남편과 성관계를 해서 그 정액이 묻은 것으로 생각된다”는 변명을 했다가 괘씸죄로 형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다른 전설적인 사건도 있다. 아내와 낯선 남성이 들어간 원룸 현관문에 귀를 댄 남편이 두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고 이를 신고했다. 재판에 넘겨진 아내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영화 ‘감각의 제국’ 등의 영상 일부 장면에서의 신음소리가 흘러 나간 것”이라고 항변했고, 법원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증거물인 이불에서 남성의 정액이 검출되자, 이 남성은 “간통을 한 것이 아니라 상대 여성을 짝사랑 중이라 홀로 상상하며 자위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실형을 받았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간통죄가 폐지됐어도 변명은 여전하다. 이혼 소송과 강제추행,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여지를 줬다” “피해자가 꼬리를 쳤다”는 주장은 법정에서 더 큰 철퇴를 맞는다.

피고인을 변호한 한 변호사는 강간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기분이 좋아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해 판사와 피해자 측이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마약 사건에서도 각양각색의 변명은 끊이질 않는다. “복용한 한약 성분에 대마초 종자인 ‘마자인(햄프시드)’이 들어 있어 소변 감정에서 대마 성분이 검출됐다”, “시술 과정에서 의사가 마취제로 케타민을 사용했다”, “누군가 몰래 내 술잔에 마약을 넣었다” “복용하던 다이어트 약 성분이 분해되지 않아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등 허무맹랑한 궤변이다. 물론 이러한 항변 대부분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법정에서 모든 변명이 꼭 이렇지는 않다. 사건의 특성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변호인들의 변론이다. 적절한 변호로 피고인을 보호하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공정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변호사의 기술이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변명은 종종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이슈가 되는 사건들은 수사나 재판 과정이 언론 보도로 세상에 실시간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변론 내용도 가감 없이 보도되는데, 아무래도 피의자의 범죄 동기를 설명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주장들이 전달되다보니 ‘피의자를 두둔하냐’는 비판이 늘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인두겁을 쓰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냐”, “돈만 받으면 다 변호하냐” 등의 댓글이 수없이 달리고,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도 잦다.

판사도 예외는 아니다. 고심 끝에 선고를 내리지만 많은 비판 여론과 악성 댓글에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 대부분의 판결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고, 보도로 알려지는 내용은 전체 사건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조인들은 판사의 판단이 사건의 모든 기록을 검토하고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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