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칼럼] 판결을 ‘재량’으로 하는 오도된 현실

입력 2023-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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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재량이 정치편향 판결 낳아
재판에 필요한 건 증거와 논리뿐
견강부회 눈감으면 사법신뢰 깨져

지난달 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간 언론이나 관계자들은 주로 해당 영장전담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지적하거나 당사자인 야당 대표가 자신의 ‘사법’ 문제를 ‘정치’로 돌파한 결과라고 평가하였다. 맞는 진단이긴 하지만 본질을 비껴간 측면이 있다.

작금의 사법 현실을 보면 법관의 전문적 소양인 법리에 앞서 ‘재량’이 판결을 크게 좌우하고 있다. 사법부 신뢰를 총체적으로 흔든 ‘사상 최악의 대법원장’ 김명수 체제로 나타난 정치 편향적인 재판 지연은 ‘법관 재량 우위’ 사태의 결과이다. 여러 혐의로 기소된 야당 대표 재판 중 관련 없는 재판의 병합 문제도 그 ‘재량’이 작동하면 재판이 무한정 늘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관의 재량을 흔히 언급되는 솔로몬의 지혜처럼 현명한 역량으로 여기는 데 있다. 하지만 솔로몬의 지혜는 판결의 의미를 호도한다. 서로 아이 엄마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 재판에서 솔로몬의 판결은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진짜 아이 엄마인지를 가릴 증거가 우선되지 않아서 판결은 희화화되어 버렸다. 게다가 친모는 위증하였고 솔로몬은 아동학대 성향을 드러냈다. 오늘날로 보면 유전자 검사 결과를 증거로 채택할 일이다. ‘지혜’를 과장한 이 예화는 법리보다는 판사의 임의 재량이 허용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전파한다.

재판에 요구되는 법리는 감성적 지혜가 아니라 ‘사실(fact)’과 그 이면에 전제된 ‘논리’를 요구한다. ‘사실’은 재판에서 제시되는 증거를, ‘논리’는 제시된 증거가 이치에 맞는가, 의미상 모순이나 비약이 없는지를 가리킨다.

사실 여부는 관찰에 의존하는 만큼 단순하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라는 명제(주장)는 관찰 결과로 진위가 가려진다. 하지만 사실들의 관련을 묻는 논리적 문제는 그렇지 않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라는 주장의 타당성은 관찰이 아닌 논리의 문제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프랑스는 반드시 왕이 존재하는 왕국이어야 한다. 현재 프랑스는 공화국이므로 이 주장은 아예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 즉 사실들의 전제를 따지는 문제는 논리적 타당성 문제이다.

사기꾼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경우를 보자. 검찰의 영장 청구에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첨부되어 있다. 본안 판결에서 특정 시점에 벌어진 사기 행위는 이를 확인하는 증거만으로 죄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에서는 범죄 행위 자체보다 범죄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추론하여야 한다. 사기꾼이 과거에 사기 행각을 여러 번 저질렀던 전과가 있다면, 영장전담판사는 향후 사기 행각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발부해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관찰된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의 ‘사기 치는 습관’이다.

야당 대표의 사례에 대입하면,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되었지만 방어권 보호를 위해 내린 영장전담판사의 구속영장 기각은 ‘사실’에만 의존한 판결이라는 논리적 맹점을 지니고 있다. 증거인멸을 위한 위증교사 행위를 증거로 확인하였을 뿐, 해당 판사는 그것이 곧 향후 위증교사 행위를 할 확률이 높다는 전제, 즉 위증교사의 습관 또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점입가경으로 그는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는 사실관계를 역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일반인보다 권력이 많거나 직위가 높은 이들이 증거를 인멸하기 수월하다. 엄밀한 ‘논리’가 작동해야 할 판결에 판사의 임의 재량이 동원된 참담한 결과이다.

재량을 넘어선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상식 이하’ 판결을 낳기도 하였다. 오래전 야당 대표의 지사 시절 거짓말 재판에서 ‘토론회 중 후보자의 발언에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전직 대법관의 판결은 결국 ‘토론회 중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사법 정의를 위하여 현재 ‘50억 클럽’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는 그 대법관 자신의 혐의는 향후 담당 법관의 임의 재량으로 판결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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