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디지털 기술 실험실, 혹은 무덤

입력 2016-05-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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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과 문화 분야에 관계하고 있는 전 세계의 정부 관료, 기업, 그리고 학자들에게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관심거리이다. 이들에게 한국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실험실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기술의 무덤이기도 하다.

한국이 각국의 디지털 기술 관계자들이나 학자들에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발전시킬 때부터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게임 왕국을 만들어 가자 한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디지털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켰는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야후나 구글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한국 시장에 진입, 자신들의 첨단 기술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한국 시장이 이들 ICT 기업의 실험실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 시장은 그러나 일부를 제외한 ICT 기업들에게는 디지털 기술의 무덤이기도 했다. 야후, 구글, 그리고 애플의 아이폰 등이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큰 성공을 담보할 수 없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역시 한국 시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 자체의 디지털 기술이 뛰어난데다 국내 첨단 기술을 선호하는 한국 특유의 디지털 문화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또 급변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여러 기술과 문화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관심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네트워크화가 빠르고 깊숙이 진행된 한국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기존 디지털 기술의 미래마저 보여줄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차량마다 부착돼 있던 내비게이션이 스마트폰 때문에 없어지고 있고, 디지털 음악에 밀려 LP 레코드가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에는 이메일 사용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국내 인구의 85.7%가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이 인구 비중은 2013년에는 60.2%로 ,그리고 2014년에는 59.3%로 떨어졌다. 6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한 번 이상 이메일을 보내는 비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메일 사용이 줄어드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라인 등의 사용이 늘면서 이메일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게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카카오톡 사용의 급증은 특히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이메일을 보내놓고 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카톡 등 모바일 메시지로 일을 처리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외에도 스팸메일의 과다, 개인의 정보보호 등 사이버 안보와도 관련되어 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왓츠앱, 텔레그램, 그리고 위챗 등 다양한 모바일 메신저 앱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아직도 이메일 등 주요 디지털 기술이 유지되고 있으며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러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3% 정도씩 이메일 사용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메일 사용량은 해마다 6~7%씩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현재 26억명이 이메일 계정을 가지고 있으며, 2019년에는 29억명이 이메일 계정을 가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으로 뉴욕과 밴쿠버 등 북미 주요 도시에서는 LP 레코드 전문점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고, 방송은 LP 레코드가 부활하고 있다는 특집을 내보내고 있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과 문화는 시대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꼭 혁신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ICT 기업들에게 디지털 기술의 실험실과 무덤이라는 ‘양날의 검’을 연상시키는 한국 시장.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쏠림현상은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문화는 기존의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두고 발전해야 더 큰 사회·경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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