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미납 추징금 991억 원 환수를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목록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7년 전 추징금에 대한 재산명시가 이미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에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3부(재판장 박병태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검찰이 전 씨를 상대로 낸 재산명시 신청 항고를 기각했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전 씨를 상대로 재산명시 신청을 했으나 13일 만에 기각되자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최초 재산명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거액의 추징금 미납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으로 생활 중인 점 등을 이유로 다시 재산명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지난해 골프 회동과 1인당 20만 원이 넘는 호화 오찬으로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항고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전 씨의 재산을 다시 명시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 씨의 동일한 추징금에 대해 2003년 이미 재산명시를 신청한 만큼 이를 다시 할 필요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로 신청을 기각했다.
법조계에선 이례적인 판단으로 보고 있다.
재경지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17년 동안 재산의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재산명시) 신청을 한 번 했다고 기각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다른 변호사도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재산 변동의 가능성이 크고 추징 시효도 남아있는데 그런 사유로 기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 씨는 반란수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전 씨가 뇌물로 받은 액수 등 2205억 원을 추징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검찰은 추징 시효를 한 달 앞두고 전 씨가 314억만 납부하자 재산명시를 신청했다.
2003년 4월 서울지법 서부지원 민사26단독 신우진 판사는 전 씨에게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며 재산명시 명령을 내렸다. 이때 전 씨는 재산목록에 진돗개, 피아노, 에어컨, 시계 등 수억 원 상당의 품목을 적고 예금 29만1000원(15만 원, 14만 원, 1000원이 든 예금통장 3개)을 기재했다.
특히 전 씨에 대한 새로운 재산명시는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의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 전두환 추징법은 2013년 7월 전 씨의 불법재산 환수를 위해 신설됐다.
전두환 추징법에 따라 전 씨가 제3자에게 이전한 재산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재산명시가 필요하다. 재산명시 목록에는 유상양도나 무상처분을 받은 사람의 개인정보, 거래내역, 권리 이전 내용, 명의신탁, 신탁재산 등을 모두 적게 돼 있다. 거짓으로 재산목록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검찰은 서부지법의 항고 기각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재판을 통해 추징 적법성을 가리고 있는 전 씨의 연희동 자택과 이태원 빌라, 오산 일대 토지를 비롯해 미납 추징금 환수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