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명예회장은 재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줘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또 인재양성을 위한 사회 공익활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자연을 벗 삼아 간소한 여생을 보내며 은퇴한 경영인으로서의 삶으로도...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평생을 두고 인재 확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해 인재를 육성해 나갔다.
‘그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사명감으로 꽉 찬 사람’이 인재라 여긴 구 명예회장은 이러한 인재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스스로 성장하며 변신하고 육성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때문에 구 명예회장은...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재계의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해 기업을 자본 시장으로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다. 또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하는 등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질적인...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한 구자경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그가 열정을 쏟은 연구개발의 결과로 축적된 기술력 덕분에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이 가능했고,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화학∙전자 산업의...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고(故) 구인회 창업 회장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경영에 발을 들인 구 명예회장은 1970년 45세의 나이에 LG그룹 회장에 올라 1995년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1995년 럭키금성 그룹의 명칭을...
상남(上南)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이에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례가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이날 LG그룹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2019년 12월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향년 94세에 별세했다"며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족들이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고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경영의 바통을 넘기기 전 LG그룹이 현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1950년 부산 사범학교 교사로 재직 중 부친의 부름을 받아 그룹의 모회사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14일 오전 향년 94세 나이로 구자경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70세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LG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는 철학이 이유였다.
이후 구자경 명예회장은 충난 천안에 있는 농장에서 버섯을 재배하며 취미생활을 이어왔다. 취미 생활 중에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LG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고인은 1995년 1월 럭키금성 그룹을 LG그룹으로 바꾸고, 장남인 고...
(부장검사 오현철)는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의 고발에 따라 구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구 씨는 검찰 수사에 앞서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검찰은 구 씨에 대해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기소중지했다.
구 씨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조카로 2007년 신소재 개발업체를 인수하면서 주가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2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기도 했다.
구 씨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조카다.
구 씨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코스닥 상장 게임회사를 인수하고, 공범인 페이퍼컴퍼니 임원들과 서로 주식을 고가에 사고팔아 시세를 조작하고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을 받는다.
구 씨는 앞서 2007년 신소재 전문기업을 인수하면서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 139억...
최 부사장의 아버지인 최병민 회장의 부인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딸 구미정 씨여서 범LG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회사가 어려웠을 때 희성전자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때 희성전자가 일시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2대주주로 남아있다.
깨끗한나라는 2010년 경영 개선작업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성장세를...
LG와 GS는 창업주인 ‘구인회-허만정’ 시대에서 구자경 LG 명예회장-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2세대를 지나 고(故) 구본무 LG 회장-허창수 GS 회장에 이르는 57년의 동업 관계를 2005년 청산하고 계열분리를 끝낸 바 있다.
향후 LG와 GS는 주유, 쇼핑 등의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갈 방침이다. 황정환 LG전자 융·복합사업개발부문장(부사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은 회장 재임 시절인 1989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LG연암문화재단을 통해 해외 연구 기회가 부족한 국내 대학 교수들이 해외 유수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진행, 우리나라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에 기여하할 수 있도록 했다.
고 구본무 LG 회장은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지원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각별한...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 ‘스타급’ 총수들을 배경으로 전경련은 상당 기간 전성기를 구가했다”며 “한때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장관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전경련의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6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2002년 대선자금...
선친이 별세한 지 41일째 되는 날 '창업주' 구인회 전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에 이어 사실상 그룹 총수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앞서 구광모 대표는 중소식품회사 보락의 정기련 대표 맏딸인 정효정씨와 결혼했다.
LG그룹과 보락의 사업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인회, 구자경,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온 LG 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 상무가 그룹 총수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이사회에선 구 상무가 그룹 내에서 맡게 될 직급도 결정한다. 재계에서는 구 상무가 사장이나 부회장 직급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주사 대표로서 보좌를 받아야 할 전자·화학·디스플레이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 고인의 아버지인 구자경(93)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3세 경영자로 LG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만큼 재계에선 회사장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구 회장이 살아온 궤적에 따라 유족들은 가족장으로 결정했다. LG그룹 측은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며 “가족 외의 조문과 조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