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승민 의원같은 소식 정치인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9일 오전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 의원의 선친 고(故)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를 조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여름 국회법 개정 파동 당시 박 대통령의 공개적인 비판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호용 전 국방장관, 고(故) 김윤환 전 의원 등과 경북고 동기이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옥성 씨와 법무법인 바른의 유승정 변호사, 유 전 원내대표, 유진희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특 101호(053-200-6141)이며, 발인은 오는 1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북...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선거에 몇 번 나왔을까?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무소속으로 한 번, 도합 세 번 나왔다. 1997년 15대 김대중, 2002년 16대 노무현, 2007년 17대 이명박이 각각 당선된 선거였다. 왜 이런 걸 묻느냐고? 2007년 대선 청문회에서 이회창 후보가 틀린 대답을 했던 게 기억나서다. 대선에 두 번 나왔다는 그에게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이라고 누가(아나운서?)...
우리나라는 정당후원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정치기부금은 정당이나 후보자 등을 위해 활동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에 의해 모금되는데 기업이나 단체가 후보자에게 직접 기부하는 것은 막고 있지만, PAC을 통한 기부는 허용하고 있다.
다만, 모든 PAC의 회계보고 내용을...
정당후원회는 지난 2002년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이른 바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정경유착 방지를 위해 정당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새누리당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연속 참패하면서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당의 후원회와 후원금 모집을 금지한 현행법 조항의 위헌성을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정당후원회를 찬성하는 이들은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에 후원금을 내는 것에 대해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정치자금 투명성 수준에서 볼 때 후원회가 허용될 경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일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정의라고 독단하는 것은 아닌지,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수직적 통치 형태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 전 총재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대통령의 리더십 특강’을 통해 “이 사회가 패기 넘치는 사회가 되느냐...
이회창 전 총리(26대)는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해찬(36대) 전 총리는 ‘3·1절 골프파동’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회창 전 총리는 입건되지 않았고, 이해찬 전 총리는 공짜 내기 골프와 공무원 윤리강령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됐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전직 총리도 있다. 장면(2대·7대)·장택상(3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인연으로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2004년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고, 이듬해인 2005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낙점됐다.
시작은 이처럼 나쁘지 않았다. 당시 ‘대구’ 지역구를 바탕으로 유 의원과 박 대표는 더욱 가까워졌고, 유 의원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으로 떠올랐다.
2007년 대선...
지난 2002년 5월 24일 대선후보 방송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이회창 후보는 “옥탑방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는 한 패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답해 서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후보가 ‘옥탑방’도 모르냐는 비판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반)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의 첫 자를 따 ‘지․옥․고’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까. 세 곳의 주거시설이 ‘지옥의...
이어 1999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언론인으로 변신했다가 2002년 옛 한나라당 제16대 이회창 대통령후보 상근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3선 경력의 중진 정치인이 된 최 부총리는 지식경제부 장관(2009~2011년)과 새누리당 원내대표(2013~2014)를 거쳐 작년 7월부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지난 2007년 당내 대선 경선 캠프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도왔고, 앞서 2002년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과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호흡을 맞췄다.
황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이들은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과 정부의 경제활성화 핵심 과제인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각종 입법 과제 달성을 위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하고 제18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새누리당에서 2년 가까이(665일) 대변인을 맡으며 이 분야 당내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계파색이 옅고 친화력이 강하며, 차분하고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사퇴의 변’을 통해 “공무원연금개혁이 애초 추구했던...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제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와 당 대변인을 지냈고,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에 도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도 종로 또는 서초갑 출마가 거론된다. 하지만 종로는 ‘정치1번지’라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어서, 전력공천 지역이 될 가능성도...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제18대 총선에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후 새누리당에서 2년 가까이(665일) 대변인을 맡으며 이 분야 당내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맡으면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신(新) 친박’ 여성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이...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3년 12월17일 국무총리로 취임한 이회창 전 총리 역시 단명한 경우다. 이회창 전 총리는 재임 후 125일만인 1994년 4월21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불화로 전격 교체된 바 있다. 2000년 1월13일 국무총리에 취임한 박태준 전 총리는 부동산 명의 신탁 등의 의혹으로 126일만인 같은해 5월18일 경질되기도 했다.
'이완구 총리 사의 표명'
이어 “일부 신문에서 (윤씨가) 내 측근으로 보도되는데, 이회창 총재 보좌관 하던 분이 2010년에 그를 데리고 왔다. 유력 신문 정치부 차장을 했기 때문에 공보 특보를 해 준다니 고맙죠”라며 “2010년 (당대표 경선 때) 공보 특보를 했고 캠프 회의에 가끔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2011년 경선 때는 외곽에서 민주계 인사를 상대로 경선을 도와줬죠. 그러나...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의 감사원장 시절 감사위원을 지낸 인연이 이어져 1996년 당시 이회창 선대위의장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들어게 됐다. 그해 실시된 15대 총선부터 19대까지 내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원내대표부터 당대표까지 중책을 맡은 바 있다.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8단이란 뜻)이란 별명처럼 다소 부드럽거나 편한 이미지이지만 면밀하게...
당시 '총풍사건'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려 청와대 행정관, 대북사업가 장석중씨 등 3명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에게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했을 때 야당이 북한과 물밑에서 접촉해 '북풍'을 막으려고 활용했던 인물로 거론됐다.
또 대선자금 수사 때는 대우건설 측 15억원을 한나라당 이회장 후보 법률고문인 서정우 변호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