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정치가 그리도 좋더냐?

입력 2015-10-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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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선거에 몇 번 나왔을까?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무소속으로 한 번, 도합 세 번 나왔다. 1997년 15대 김대중, 2002년 16대 노무현, 2007년 17대 이명박이 각각 당선된 선거였다. 왜 이런 걸 묻느냐고? 2007년 대선 청문회에서 이회창 후보가 틀린 대답을 했던 게 기억나서다. 대선에 두 번 나왔다는 그에게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이라고 누가(아나운서?) 알려주자 그러냐고 멋쩍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세 번째 출마는 사실 당선을 기대하기보다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려는 행위였지만, 세 번 출마 자체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결국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자의든 아니든 한번 발을 들이면 정치의 꿈과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아침엔 될 것 같은데 저녁엔 아닌 것 같다가 자고 나면 다시 백일몽에 빠지는 게 정치 입문자의 모습이다. 그런 기분이었다는 말을 대선 후보감으로 인기가 높던 저명인사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은 두 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다들 고개를 가로젓는데, 본인만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상대로 돈만 잔뜩 쓰고 꼴찌 수준의 득표를 한 그에게는 삼세번의 기회도, 여력도 없었다.

또 한 사람은 어쩌면 그럴까 싶게 안 되는 길만 골라서 줄을 섰다. 조금만 참으면 그토록 바라던 금배지를 다는 건데, 고비마다 줄을 잘못 섰으니 스스로 복을 찬 셈이었다. 20년쯤 전에, 착실히 교회에 다니며 음식점을 경영하던 그에게 이젠 정치 꿈을 접었느냐고 물은 일이 있다. 그는 “정치에 목매는 사람들의 영혼이 불쌍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1년쯤 뒤에 그는 또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고, 또 떨어졌고, 다시는 출마하지 못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공직에서 사퇴한 사람들 때문에 청와대 대변인과 춘추관장이 최근 바뀌었다. 내년 20대 총선일은 4월 13일이므로 출마를 희망하는 공직자들은 90일 전인 내년 1월 14일까지는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버티기보다 일찍 물러나 음으로 양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불과 몇 개월짜리 장관들이다. 내년에 출마할 게 뻔한 사람들이 ‘대통령의 명에 따라’ 장관이 됐다가 ‘대통령의 명에 따라’ 총선에 출마한다면 장관직이란 대체 뭔가. 그런 사람들이 장관 후보로 정해졌을 때 이미 ‘10개월짜리’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던가.

1969년 10월부터 1979년까지 10년간 재무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특보로 일한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생전에 “장관 취임 후 업무내용과 현안을 파악한 뒤 새로운 정책을 소정의 절차를 거쳐 국회에서 입법화하자면 2년도 짧다”고 말한 바 있다.

몇 개월짜리 장관 외에 좀 오래된 장관 중에서도 출마 희망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도 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대학교수든 기업인이든 원래의 생업을 제쳐두고 정치판에 들어서려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정치를 하려 할까.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웃기는 소리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해서, 본래의 생업을 공고히 하거나 가계와 가문을 일으키려고 그러는 것이겠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면 그렇게 1년 내내, 아니 4년 내내 싸움질이나 하고, 분탕질이나 치고, 선동질이나 하고, 말질 갑질이나 할 리가 없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면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장관들에게 “대면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대통령에게 나중에라도 그렇다고 말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장관이 되는 것도, 정치판에 들어가거나 돌아가는 것도 다 자기 뜻이 아니라 대통령의 명에 따른 것이라면, 만약 그 말이 다 맞다면 그렇게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쓰는 대통령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정말 궁금하고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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