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외로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생명의 그늘이라고 나는 부른다. 몸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 외로움은 살아있는 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외로움이라 하고 고독이라 하는 말은 모든 예술작품의 기본이다. 특히 문학 안에서 가장 큰 주제가 외로움 아니던가.
그 외로움에서 파생되는 사랑과 만남과 이별, 그리고...
성격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나이가 들어도 변하는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신체적인 단점은 변하려는 훈련을 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성격은 백 번 노력하면 아주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것은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손이 그렇다. 여자는 손이 아름다워야 모두가 아름답다고 했다....
12월은 아무래도 참회록(懺悔錄)을 읽는 시간이다. 그러나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끝은 시작이니까. 결국 우리는 12월의 참회록을 1월의 희망록으로 바꿔 부를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과 자신 없음과 자기에 대한 실망이 당당함과 자신만만으로 변화할 수 있는 믿음 때문에 다시 12월을 건너 1월로 가는 것이리라.
대나무를 생각해 본다. 안은 텅텅 비었지만 자신의...
갈등은 축복이란 말이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에서 생겨난 모순적 명언(名言)이다. ‘옥에 티’가 있다는 것은 그 ‘티’를 없애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한다는 틈새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생의 걸림돌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만 없다면…” 참 많이 해 본 소리다. “딱 그거 하나만 없다면 그래도 조금은 살...
한국의 피는 붉다. 그러나 그냥 붉은 것이 아니라 가을 햇볕에 맑은 하늘을 담아 발효시킨 고추처럼 붉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내가 태어난 나라라고 해서 치켜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런 낭랑한 피로 무(無)를 유(有)로 만들어 나라를 재건축한 힘의 나라라고 말해도 된다.
지금 이 나라를 재건한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은 가난하고 배를...
태어나면 입학이고 숨을 거두면 졸업인 것이 삶이다. 문득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생각을 한다. 문득 늘 함께 있었고 그 둘레 안에 살았으면서 내 앞으로 당기고 당겨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는 창밖 풍경이 오늘 나를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은 학교가 아니라 저 밖의 풍경들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삶이 곧 거대한 학교라는 사실에 내 생각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멀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오늘은 ‘학생의 날’이다.
정식 명칭은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데, ‘학생’이라는 말에는 누가 뭐래도 과도한 열정과 과도한 행동이 배어 있다. 오늘의 학생에게는 대입(大入)을 앞둔 과도한 피로와 과도한 학습만 있을 뿐이지만 ‘학생’이라는 말에는 지금도 피가 들끓는 분노가 숨겨져 있다.
역사의 이름 그...
사노라면 때로 급격하게 절벽에 떨어지듯 우울할 때가 있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거나 나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학까지 겹치면 그런 순간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존재가 불쑥 커진다. 분명 나 자신이면서 어색하고 낯선 이 아이는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그 아픈 못이 본인은 성장했음에도 자라지 않고 내면(內面)에서 울고 있는 아이로 살고 있는 존재인...
2015년 3월 백담사의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 법문에서 무산설악 스님이 하신 설법이 “괜찮아”였다. 그 이후 이 말이 유행어가 됐다.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미국 영화인 그레이엄 무어의 소감에서 온 말이다.
우리는 사느라 너무 각박해져서 남의 이상한 점에 대해 일순간 벌컥 화를 내거나 물리친다.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남에게는 물론 나...
행동은 개떡이면서 말은 비단실처럼 줄줄 풀어 놓는다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자주 아픈 곳을 지적하셨다. 어머니에게만은 아버지의 인간적 신뢰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정미소 큰 솥에서 옥수수를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을 그대로 들고 오셔서 딸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시곤 했는데 그 옥수수를 먹는 볕바른 가을 마루에 앉아 곧잘...
두 사람이 똑같이 사흘을 굶었다. 나흘째 A와 B 앞에 열 개씩 든 사과 상자를 놓았다. 마음대로 먹으라 했다. A는 너무나 허기져 사과를 보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 그렇게 먹고 나니 속도가 느려졌고 열 개를 다 먹고 나니 사과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구역질이 나려고도 했다.
B는 반대로 서서히 사과를 하나 들었다. 바라보았다. 사과의 빛깔이 이토록...
사람에게는 천성(天性)이라는 게 있는지 제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애교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애교로 나와 있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남성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남자에게는 물론이지만 내가 나에게 애교를 피우는 것도 하지 못한다. 소위 자기애(自己愛)라는...
소설가 황석영, 시인 신달자, 가수 정엽, 배우 김여진·신애라, 야구선수 추신수, 만화가 이현세, 광고전문가 박웅현 등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 주부,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보낸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서재를 구성했다.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안보, 과학, 세계화 등 여러 분야의 도서들로 이뤄졌다.
행사에 참여한 김 모씨는 ‘일은 돈벌이 이상의 존엄과...
북촌을 떠난다. ‘북촌’이라는 시집 한 권이 3년의 결과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며 서운한 마음을 감춘다. 그렇다. 나는 이사를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제발 그날만은 더위를 견디더라도 비만은 오지 않기를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두컴컴해지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살림살이란 필요하지만 마당으로 끌어낸 모든 것이 숨을 멈춘...
사흘 전 우리 가족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관우의 군 입대(入隊)날이 정해져 할머니인 내가 잘 다녀오라고 내는 저녁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에겐 오빠가 한 명 있었다. 1950년, 청주대학교 2학년 때 자진 입대를 한 후 적과의 교전(交戰)에서 총에 맞아 숨을 멈췄다. 경기도 안양 어느 부근이라고 했다....
여행 떠난다는 사람들의 전화가 많다. 유럽으로, 실크로드로 모두 분주히 가방을 챙기고 있겠다. 그래, 지금은 떠나는 시간이지. 그러나 그 전화를 받는 나도 떠나고 있다. 집에서도 사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거니까.
“또 여행이에요?”
딸들과 함께 시장을 보거나 백화점 쇼핑을 할 때 딸들이 하는 말이다. 나는 모자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안경을 사거나, 하다못해 양말...
나는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하면 그 시를 소리 내어 읽고 노래를 한 번 부른다. 곡진한 마음이 저절로 노래로 이어지는 것 같다. 잦은 일은 아니지만 혼자 와인을 마시고도 노래를 한 번 부른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왠지 하고 싶은 말을 누구에게 털어 놓은 것같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조금 심하게 외로움을 느끼면 우두커니 앉아 있기가 쉬운데 울컥 마음을 가누기...
여성 대통령(大統領)을 먼저 낸 것으로 한다면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앞선 나라다. 그러나 여성 대통령의 끝이 몰락하면서 그 자부심마저 내려놓아야 했다. 언제 한국에 여성 대통령이 다시 나올지 참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성이 인간을 앞지르는 영웅적 실화를 만들어 놓은 경우는 정치 역사보다 현실에 더 많았다. 유관순, 신사임당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말[言]은 인간의 특권이라 사람들은 날마다 말을 하고 산다. 사실 눈만 뜨면 하는 것이 말이 아닌가 싶다. 상대와의 의견 소통도 말이고 가르치는 교육도 말이고 사회가 도덕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일도 모두가 말로 이루어진다. 말이 없다면 인간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하게 반드시 해야 하는 말에는 우리가 너무 인색할 때가 많다. 한국...
1992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이력서를 냈다 탈락(脫落)해 우울하던 중에 평택에 있는 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국문과를 새로 만들려고 하니 함께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멀기도 했고 국문과가 야간과정이었으므로 갈등을 하다가 결국 평택으로 출퇴근을 했다. 저녁 6시 어스름 지하 101호실은 우울했다. 거의 재수(再修) 삼수(三修)의 주인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