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맛있는 커피, 기후변화 대응에 달렸다

입력 2014-09-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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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갑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장

한국은 커피공화국이다. 커피전문점이 차고 넘친다. 1902년 손탁호텔(Sontag Hotel)에 정동구락부란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 생긴 지 한 세기만의 일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 여의도는 폐점된 은행과 증권지점들이 유명 커피전문점으로 속속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표준화된 맛의 ‘베리에이션 커피’를 파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2009년 706개였던 게 지난해 2315개로 대폭 늘어났다. 한 가지 원두로 천 가지 맛을 만들어낸다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도 증가 추세다.

커피는 ‘이성의 음료’였다. 카페인 각성효과에 빠진 지식인과 술을 멀리하는 종교인들이 주로 애용했다. 이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감성의 음료’로 탈바꿈 중이다. 덩달아 커피 추출 전문가인 바리스타와 커피 원재료인 생두의 등급을 판정하는 큐그레이더가 전망 좋은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커피는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의 대표 수출상품 중 하나다. 중남미는 세계 커피 생산과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남미의 커피 수출액은 연간 110억달러(60kg 단위 5500만 자루) 수준으로, 그중 브라질이 80억달러(4000만 자루)를 차지해 단연 1위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제일 많이 수입하는 커피는 예상외로 베트남산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베트남산 생두는 지난해 우리나라 커피 수입의 32.4%를 차지하며, 브라질산(19.2%), 콜롬비아산( 12.7%)을 크게 앞질렀다. 1990년대 초반 세계 커피 생산의 0.1%에 불과하던 베트남은 2013년 15%를 차지하면서 세계 커피생산 2위 국가로 부상했다.

‘차(茶) 대국’ 중국도 ‘커피 대국’에 합류할 기세다. 윈난성 지역에서 대규모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해 2012년 5만톤이던 생산량은 2013년에는 8만톤으로 무려 60%나 늘어났다.

커피산업은 생산국과 소비국이 분리되어 있어 커피를 통해 파생되는 부가가치의 90% 이상이 커피 소비국에서 발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커피를 수확하는 노동자의 하루 노임과 비슷하다. 시중에서 팔리는 원두커피 한 잔 가격이 보통 4000원인데 전 세계 2억명에 가까운 커피 노동자 일당도 이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커피산업이 최근 지구온난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뭇잎 뒷면에 녹이 슨 듯한 형태로 오렌지색 포자가 나타나는 ‘커피녹병’이 중남미에 퍼지면서 농장들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근래 수년간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커피 녹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섭씨 10도 이하에서는 살 수 없으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카리브지역 커피 재배지의 기온이 10도를 넘는 일이 잦아지면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중미국가들의 연간 피해액은 6억달러에 달하고, 커피 노동자 40만명이 실직하는 등 중남미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중남미지역의 커피는 물론 베트남, 중국의 커피농장도 사라질 판이다.

이처럼 전세계 그 누구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해갈 순 없다. 지구온난화로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개도국에서만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만 실현 가능하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더 큰 선진국은 탄소배출량 감축에 소극적이고,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업을 갖고 있는 개도국은 이에 대응할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은 2012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진행된 제2차 UN GCF(Green Climate Fund, 녹색기후기금) 이사회에서 독일, 스위스, 멕시코, 폴란드, 나미비아 등 쟁쟁한 5개 경쟁국을 물리치고 GCF 사무국 유치에 성공했다.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범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리란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커피녹병으로 시름에 잠긴 중남미 국가들과 전 세계 커피 마니아들을 위해서라도 기후변화 대응에 만전을 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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