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조율이 안 돼 죄송합니다” -신동민 세종취재본부장

입력 2014-07-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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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동일 차량의 연비에 대해 통일된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지난주 자동차 연비 사후 관리를 둘러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의 밥그릇 싸움에 조율에 나섰던 기획재정부의 정은보 차관보의 말이다.

그동안 승용차 연비 사후 검증은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근거해 산업부가 맡아오다 국토부가 지난해부터 자동차관리법에 근거해 사후 검증을 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중복규제라는 불만이 쏟아졌다. 문제는 현대차 싼타페 2.0과 쌍용차 코란도S 등 2개 차종 연비에 대한 이들 두 부처의 사후 검증 결과가 하나는 ‘적합’으로 하나는 ‘부적합’으로 달라 혼선을 빚었다. 양 부처의 검증 방식과 기준 등이 서로 다르다는 업계의 주장과 볼썽사나운 두 부처의 힘겨루기 양상이 나오자 부총리급인 기재부가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재검증 결과도 다르자 기재부가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기재부의 보신주의 발표로 자동차업계는 물론 최대 1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던 소비자나 시민단체들도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번 기재부의 발 빼기에 대해 “나라도 아니다”라는 거센 비난이 일 정도로 한심한 정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조율과 결정이 공무원의 보신주의와 눈치 보기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애초 이번 산업부와 국토부 밥그릇 싸움은 국무조정실에서 나서서 중재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이 아닌 떠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쪽에 책임을 떠넘겼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거센 비난을 받는 이번 사안을 총리 인선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무조정실은 기재부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국무조정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 같이 결정을 해야 할 책임 있는 부서가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무조정실이나 기재부는 타 부처가 내놓은 좋은 정책은 총괄 부처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발표하고 반발 여론이 거센 정책은 주무부처에서 발표하도록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쌀 관세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결정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농민과 일부 야당 의원의 거센 반발을 피하겠다는 의도다. 그동안 관세화 문제에서 기재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사항은 없다. 유독 쌀 관세화와 관련해서는 기재부는 눈치 보기만 하고 있다.

관세화 문제인 만큼 5년간 다시 유예를 할 것인지 쌀 관세화로 쌀시장을 개방할 건지 정부 입장은 경제부총리가 있는 기재부에서 발표해야 한다. 후속 대책은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와 산업부에서 마련하는 것이 맞다.

이번 자동차 연비 사후 관리 발표처럼 기재부가 발을 빼고 해당 부처의 밥그릇 싸움만 키운다면 정책 효과의 직접 당사자인 국민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일만 초래할 뿐이다.

사실 이번 자동차 공인연비 인증을 둘러싼 산업부와 국토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심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산업부가 그동안 자동차 업계와 얼마간 유착이 되어 있지 않았겠냐”는 비난을 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국토부가 자신들을 거들떠보지 않던 자동차 업계를 이번 기회에 손봐주고 공인연비 인증을 모두 가지고 가려는 속셈이다”라고 말한 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한심한 자화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최근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국장이 기자들을 만나 담뱃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기재부가 조율도 안 한 정책을 ‘일개 국장이 발표했다’고 발끈한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가 이제라도 그동안 ‘나만 안 걸리면 돼’라는 이기주의를 벗어버리고 비난 여론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장 쌀 관세화 문제부터 기재부가 앞장서 총대를 메고 정부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 이미 쌀 관세화는 피하지 못한다는 점을 기재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재부의 주무부처 결정에 따른다는 말은 경제부총리가 왜 있는지 존재 이유를 없애는 무책임한 말이라는 것을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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