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뒷담화] 엄중 문책했다던 롯데 신동빈의 사장단 회의…현장서 봤더니

입력 2014-06-25 17:37 수정 2014-06-2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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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이른 아침 6시, 기자는 양평동에 위치한 롯데홈쇼핑·롯데제과 사옥으로 향했습니다. 매년 1~2회 개최해 실적과 투자, 사업계획 등을 논의하는 롯데그룹의 올해 첫 사장단 회의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죠. 특히 양평동 사옥은 2010년 상반기 회의가 개최된 이후 4년 만에 다시 열리는 곳입니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신축한 점포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사업장 등에서 사장단 회의를 여는 등 회의 장소에 남다른 의미를 둡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 첫 회의 장소를 양평동으로 선택한 이유를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죠.

롯데그룹은 롯데홈쇼핑의 납품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의 납품비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최악의 비리 현장에서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확고히 하려는 신 회장의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이날 오후 노타이 차림으로 굳은 표정의 신 회장이 양평동 사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발걸음 재촉하며 7층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42개 계열사 대표이사와 정책본부 임원 등 60여명도 속속 입장했습니다.

오후 3시 회의장을 찾은 기자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회의장에 모인 신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은 다과를 즐기며 담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회의장에 놓인 네슬레 제품을 살펴보면서 웃음소리도 흘러나왔습니다. 기자는 앞에 안내를 맡고 있는 여직원 한명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사장단 회의가 지금 진행 중인 건가요?” 물음에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네. 진행 중입니다.”

그 시각 롯데그룹에서는 신 회장이 롯데홈쇼핑의 납품 비리 사건을 언급하며, 부정비리 척결의지를 밝혔다는 내용의 사장단회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신 회장은 “롯데홈쇼핑 사건은 충격과 실망 그 자체였다. 그간 온 정성을 다해 쌓아왔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각 사 대표이사들의 책임 하에 내부 시스템에 허점은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각 사 실정에 맞게 부정·비리 재발방지 대책을 다시 한 번 보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그는 “고객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는 ‘부당한 금품이나 향응의 수수’, ‘개인정보 유출 행위’,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안전사고’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문책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충격과 실망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을 받았다는 신 회장의 언급과는 달리, 사뭇 다른 모습의 사장단을 마주한 기자는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더욱이 회의가 개최되기 전날 검찰은 3개월간 이어진 롯데홈쇼핑의 수사를 마무리하고 신헌 롯데쇼핑 전 대표 등 임직원 10명을 포함해 모두 24명을 관련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수사결과 상품기획자(MD)부터 대표이사까지 수억원대 리베이트를 뇌물로 받았습니다. 현금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자동차 등을 뇌물로 받았고, 받는 수법도 아들, 아버지 등 친인척뿐만 아니라 전처, 내연녀 동생의 계좌까지 동원하는 등 이른 바 ‘슈퍼 갑(甲)’질은 조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롯데그룹의 스타 CEO로 활약한 신 전 대표는 이들이 조성한 6억5100여만원의 비자금 중 2억2600여만원을 상납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또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직접 수수하기도 했죠. 현금뿐만 아니라 시가 2000만원에 달하는 그림도 받았습니다.

회의가 개최된 당일 아침에는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여동생이 롯데마트 납품을 책임지겠다며 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비리 혐의로 피소된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날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 5월 예정된 홈쇼핑 채널 재승인 심사에서 롯데홈쇼핑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방침을 정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죠.

업계는 최악의 경우 롯데가 홈쇼핑 사업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홈쇼핑의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한 일벌백계 차원에서도 롯데의 홈쇼핑 사업권을 박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매년 10% 이상 고속 성장한 홈쇼핑 사업권을 박탈당하면 롯데 입장에서는 뼈 아프겠죠.

회의가 비단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엄중한 질책이 이어진 뒤,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때 공교롭게도 기자가 봤을 수도 있었겠지요.

롯데그룹은 이에 대해 장시간 진행되던 회의 중간에 가진 몇 차례의 휴식시간(break time)이었다고 해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회의가 롯데홈쇼핑 납품비리와 연계된 그룹 수뇌부들간의 회동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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