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북한에 대한 예의와 격

입력 2014-02-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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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늦게 참석한 대여섯 명의 저녁 자리,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질문이 날아왔다. 북한이 아직도 청와대 밑에까지 땅굴을 파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북한을 잘 안다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그렇게 말했고, 누가 저녁 자리에 그 말을 전하는 바람에 밥상머리 논쟁이 일어난 것이라 했다.

도로 반문을 했다. 북한이 그렇게 원시적이냐고. 미사일을 날리면 요격도 하지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웬 땅굴이냐고. 그 정도로 원시적이라면 걱정이 없겠다고 했다.

북한의 권력 핵심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이들의 말은 얼마나 정확할까? 답을 구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권력 핵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한 번 물어보자.

우리의 경우 정치과정과 정책과정의 웬만한 부분이 다 공개된다. 공개되지 않는 부분도 취재의 대상이 된다. 때로 기자들의 눈은 청와대 안의 깊숙한 곳까지 미친다. 또 법이나 권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인적 네트워크들이 작동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런저런 정보들이 빠져나와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진실이라 알려져 있는 것 중에서도 사실이 아닌 게 많다. 관계된 사람들의 무용담, 덕담, 변명, 왜곡에 전달자의 과장, 상상, 추리 등이 어우러지면서 숱하게 많은 허구가 만들어진다. 심지어 권력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도 모르는 게 많다. 저 일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저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우리가 이럴진대 폐쇄사회인 북한은 어떨까? 북한을 좀 연구했다고 해서, 고위급 탈북 인사라 해서 잘 알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김정은의 사생활에서부터 장성택이 죽는 장면을 거쳐 군사전략에 이르기까지 쏟아 놓는다. 듣기를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다. 신문도 문제지만 이들의 말을 거르지 않은 채 내보내는 방송은 더욱 큰 문제다.

이번 설 연휴 동안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김정은의 여성 편력이 어떻고, 장성택과 리설주의 관계가 어떻고, 최영해의 군부 내 위상이 어떻고…. 이미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 개입설을 흘린 방송이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변한 게 없다.

가볍게 생각할지 모른다. 북한이 잘못된 나라임은 틀림없는 사실, 이를 알려주는 효과는 있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 대화건 전쟁이건, 또 통일이건 상대를 바로 알 때 잘할 수 있다. 선정적이고 희화된 이야기들이나 그로 인해 생긴 선입관이나 편견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대 세습만 해도 그렇다. 30세의 경험이 일천한 청년이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데에는 그 만한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권력구도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문화와 정치사회화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진지하고도 냉철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게 아니다. 추측성 권력투쟁 이야기에 젊은 지도자에 대한 조롱과 폄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담과 증언들이 남북대결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잘 알다시피 동북아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변하고 우리와 미국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설명도 있다. 만에 하나 중국과 일본이 부딪치고 그것이 우리의 영토와 영해로 번져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북한에 이어 중국과 일본을 향한 방어벽까지 쌓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남한에 이어 중국과 일본을 향한 방어벽까지 쌓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화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근거 없는 사실을 퍼뜨리고 조롱하고 폄하할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북한을 경계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은 또 다른 일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적이라 하더라도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그래야 대화와 협력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하게 되고 이겨도 제대로 이기게 된다. 언론도 국민도 예의와 격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보다 진지한 태도로 북한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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