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해외수주 1000억달러]현대건설 해외수주 1000억 달성으로 돌아본 해외건설史

입력 2013-11-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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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건설사의 해외건설 진출 역사는 말 그대로 피·땀·눈물로 이뤄진 것이다. 한때 석유파동에 따른 중동붐이 일면서 일감을 많이 확보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중반 원유가격 하락과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등의 여파로 해외건설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축소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부터는 수주가 급증하며 건설업이 국내 수출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 이동통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1965년 해외 건설시장 첫 진출 이후 국내 건설사들이 11월 현재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의 총 누계액은 5970억달러다. 국내 건설사들은 지난해 6월 해외 진출 47년만에 해외수주 누계 500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올해 안에 해외수주 누계 6000억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07년 이후 최근 6년간 해외수주 금액이 전체 해외수주액의 절반을 넘는 3829억달러에 달해 해외건설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개척기(1965년~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해외건설시장 진출은 1965년 5월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시작됐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태국 정부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되면서 태국의 수많은 후속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 시공케 된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미군사업 및 차관사업 특수를 누렸는데, 당시 동남아지역이 전체 수주의 78%를 차지했다.

1973년에는 삼환기업이 사우디에서 도로공사를 수주하며 건설시장을 중동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시기에는 저비용 건설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단순한 건설기술이 요구되는 도로공사 중심으로 해외진출이 이뤄졌고, 정부로부터 해외건설이 수출산업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확장 및 성숙기(1975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1차 중동 붐으로 불리는 시기로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어들인 중동 산유국들이 인프라 개발에 집중하던 시기다.

우리나라는 1976년 25억달러, 1981년 137억달러를 수주하며 1980년대 초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해외건설 강국으로 등장했다. 이후 3년간 100억달러 이상을 수주했다.

정부는 해외건설을 전략산업으로 인식, 지원책을 강화하면서 수주 확대에 일조했다. 해외건설촉진법(1975년 12월), 공동지급보증제, 해외건설에 대한 법인세 50% 감면, 도급허가기준(1978년 9월), 자율조정제도(1979년), 진출지역제한제도(1980년 10월) 등 다양한 시장개입 정책을 도입했다.

◇침체기(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유가 하락으로 인한 중동 경제 불황으로 수주가 급감해 해외건설산업이 최대의 위기에 처했던 시기이다.

1988년 수주고가 사상 최저인 16억달러에 그쳤고 1990년 초 리비아 대수로공사 2단계(46억달러)를 수주하며 연간수주액이 65억달러까지 상승하긴 했지만 이후 2년간 해외수주액이 20억~30억달러에 그쳤다. 중동시장 의존도가 71%에 이를 정도로 지역편중 현상이 극심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국내 내부적으로도 건설업체들의 기술적 한계와 함께 신시장 개척 노력이 미흡했고 국내 건설근로자의 임금이 급상승하는 등 가격경쟁우위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도약기(1990년대 중반~1997년 금융위기)

중동이 주춤한 사이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인프라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건설이 조금씩 살아났다.

연간 해외수주액이 70억달러를 넘어섰고 1996년 108억달러, 1997년 140억달러 등 100억달러 이상 수주에 성공하며 활기를 찾았다.

수주 공종도 단순 토목·건축공사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공사 수주가 늘면서 비중이 전체의 33.7%를 차지했고 해외 투자개발사업도 증가해 전체의 20.8%에 이르기도 했다. 해외 투자개발사업은 동남아국가들이 자금이 부족하자 민간투자를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 투자개발사업 증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했고 개발금융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경쟁기반 강화가 과제로 부상했다.

◇조정기 및 적응기(1998년~2000년대 중반)

IMF 외환위기 여파로 국가와 기업 신용도가 하락해 보증 발급 및 시공자금 조달 등 금융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했다. 해외 투자개발사업에 손을 댄 건설사들은 줄줄이 손해를 보며 톡톡히 수업료를 치렀다.

외환위기는 아시아 전역으로 번져 투자개발사업 비중은 1900년대 중반 20.8%에서 1.76%로 급락했고, 대신 플랜트 공사가 업계의 수익성 위주의 영업전략과 맞물려 주력 공종으로 등장하며 점유율이 58%에 이르렀다. 주력시장도 동남아에서 중동으로 다시 전환됐다.

◇제2 중흥기(2000년대 중반~현재)

2000년대 중반부터 산유국들이 오일머니를 석유화학 공장 등 생산기반 건설에 집중 투자하면서 해외건설 중흥기에 돌입한다.

2007년 397억달러, 2008년 476억달러에 이어 2011년 591억달러, 2012년에는 649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는 등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수주증가는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중동 산유국의 발주 증가와 함께 우리 건설업체들의 국제경쟁력 상승, 국내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해외시장 관심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이다.

수주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2007년부터 2013년 11월 현재까지의 수주금액은 3829억달러로, 해외수주 총 누계 5970억달러의 64% 이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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