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의 저주] 동양, 자금난에 수년째 CP로 돌려막기… 그룹 공중분해

입력 2013-10-08 11:0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신용도 낮은 동양레저·인터내셔널 4586억 발행… 불완전 판매, 금감원 권고도 무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동양그룹은 CP(기업어음)이라는 임시방편으로 연명하다 결국 기업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예상되면 조속한 제도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경제 분야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다. 재계 순위 38위인 동양그룹이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그룹 해체는 물론 우려했던 투자자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채권·채무가 동결돼 이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산 투자자들은 제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규모 원금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특히 기관들은 빠져 나가고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개인이어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동양에 대한 국감 등을 준비하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위기 봉합책으로 사용된 CP

동양그룹 사태가 이토록 커진 것은 이 회사가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CP(기업어음)를 발행해 위기를 봉합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에는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았지만 정보에 어두운 개인투자자들은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해 동양증권이 판매한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포함) 규모는 4586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중 개인투자자들이 4305억원 어치를 매입해 93.9%를 차지했다. 투자자 수도 1만363명 중 개인투자자가 99.2%인 1만295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동양그룹의 자금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부채를 제외하더라도 연말까지 1조원이 넘는 기업어음 및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포함하면 총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기업어음(CP) 돌리기로 막아온 건 이미 오래전 일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금융감독원도 2009년부터 동양그룹 측에 CP 물량을 줄이고 자산을 매각해 빚을 갚으라고 재촉해왔고 이런 내용으로 동양증권과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동양그룹 역시 초반에는 어느 정도 따라오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자산 매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감독당국의 권고는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대규모의 CP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CP는 회사채에 비해 발행이 자유롭고 감독 수준이 낮아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큰 상품이다. 회사채는 투자설명서 공시 등이 의무화돼 있지만 단기 CP에는 그런 장치도 없다. 특히 CP를 주로 발행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비상장 기업이라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지난 2011년 금감원은 종합검사에서 동양증권이 7500억원어치의 계열사 CP를 투자자의 서면 확인 없이 판 사실을 적발했다. 동양증권엔 기관경고 조처가 내려졌지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동양그룹은 2010년에는 은행권의 감시대상에서도 빠졌다. 동양의 금융권 대출이 전체 금융기관 신용공여 잔액의 0.1%에 못 미치면서 은행의 관리 대상인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문제는 동양그룹의 CP를 가진 투자자들의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의 CP 구매자는 투자 금액의 20~30%, 동양의 회사채 투자자는 투자 금액의 10~20%가량을 회수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이중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는 모두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청산 절차에 돌입하면 CP 구매자는 단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회사의 회생 계획안에 따라 채권회수 절차가 정해진다. 그나마 회사채는 선순위 채권에 속해 우선순위로 변제받을 수 있지만 CP는 변제 순위가 뒤로 밀리기 때문에 최대 2~3년이 걸릴 수도 있다.

금융위는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수습책이 나오기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동양의 CP 판매 주요 창구인 특정금전신탁(특금) 관련 규제 방안이 나오고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부적격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나 CP를 팔 수 없도록 법을 고친 건 올 4월로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특금 규제는 여전히 실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제도 변경은 모든 업계와 투자자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 동양같이 한 사안만을 놓고 할 수는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의견 수렴을 거치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유예기간 등을 두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의 막대한 피해 우려가 연초부터 충분히 감지됐음에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향후 고객과 금융당국, 금융사 간에 불완전 판매 여부를 놓고 소송 등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레저나 동양인터내셔널은 신용등급이 낮은 데다 자본잠식 상태여서 동양증권이 투자자들에게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알렸느냐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해외기업 '하도급 갑질' 꼬리 자른다 [하도급법 사각지대①]
  • '주말 소나기'에도 식지 않는 불볕더위…오후부터 자외선·오존 주의보
  • '엘롯라시코'에 팬들도 탈진…이틀 연속 9:8 '끝내기 혈투'
  • 아이돌 레시피와 초대형 상품…편의점 음식의 한계 어디까지?[Z탐사대]
  • 제니와 바이럴의 '황제'가 만났다…배스 타올만 두른 전말은? [솔드아웃]
  • 송다은 "승리 부탁으로 한 달 일하고 그만뒀는데…'버닝썬 여배우' 꼬리표 그만"
  • ’돌아온 외인’에 코스피도 간다…반도체·자동차 연이어 신고가 행진
  • ‘빚내서 집산다’ 영끌족 부활 조짐…5대 은행 보름 만에 가계대출 2조↑
  • 오늘의 상승종목

  • 06.1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281,000
    • +0.57%
    • 이더리움
    • 5,125,000
    • +1.44%
    • 비트코인 캐시
    • 606,000
    • -0.49%
    • 리플
    • 692
    • -0.57%
    • 솔라나
    • 212,300
    • +3.11%
    • 에이다
    • 588
    • +0.34%
    • 이오스
    • 923
    • -1.49%
    • 트론
    • 166
    • +1.22%
    • 스텔라루멘
    • 141
    • +2.17%
    • 비트코인에스브이
    • 70,050
    • -0.92%
    • 체인링크
    • 21,400
    • +1.37%
    • 샌드박스
    • 543
    • -0.1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