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한국영화, 왜 계급문제에 몰두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3-08-2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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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국 영화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설국열차’가 그 포문을 열었고, 동시에 ‘더 테러 라이브’가 쌍끌이 흥행을 이끌더니 곧바로 ‘숨바꼭질’과 ‘감기’까지 흥행순위 5위권에 한국영화 네 편이 나란히 서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 영화 속에 어른거리는 첨예한 계급문제다. 물론 ‘감기’는 계급의 문제라기보다는 전염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는 국가의 통제 시스템의 문제가 더 정확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계급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설국열차’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자본주의의 계급문제를 환경 파괴로 빙하기를 맞아 모든 게 얼어붙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무한궤도를 달려나가는 ‘설국열차’라는 상징을 통해 도식적으로 풀어냈다. 맨 꼬리 칸에서 맨 머리 칸까지 달려가며 계급을 전복시키는 혁명의 과정은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이 꼬리와 머리가 이미 시스템으로 엮여 있는 관계라는 걸 보여주며 어떤 대안을 요구한다. 꼬리에서 머리로 달려 나가는 이 강력한 혁명의 직선 방향을 옆길로 틀어서 바라보려는 대안적인 시선은, 실로 계급의 시스템에 빠져 대립과 갈등으로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만들어낸다.

‘설국열차’가 직선으로 달리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 옆으로 비껴 나가려는 남궁민수(송강호)의 부딪침과 공감을 그려내고 있다면, ‘더 테러 라이브’는 여의도를 폭파시키겠다는 테러범과 그의 요구를 전달하는 앵커 윤영화(하정우)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과 공감을 다룬다. 앵커라면 응당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될 수도 있는 진실과 신뢰의 존재여야 하겠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국민 앵커로까지 불리는 윤영화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성공을 위해 테러 사실을 신고하기보다는 먼저 단독 특종 보도를 하려는 그런 인물이다.

하지만 이 윤영화는 결국 테러범이 테러를 저지할 수밖에 없는 계급과 시스템의 문제에 조금씩 공감하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테러범과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골자다. 윤영화는 자신도 계급의 희생양이면서 테러범과 자신은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선을 긋는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이 테러범이 처한 위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윤영화의 변화 과정은 그가 우리 사회에 내재된 계급 시스템의 문제를 이해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숨바꼭질’은 이 계급의 문제를 ‘집’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번듯하고 깔끔하게 구획된 고급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성수(손현주)와 이제 곧 철거를 앞둔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주희(문정희)를 병치시킨다. 성수는 집 없는 노숙자들이 그 더러운 몸을 이끌고 자기 집에 들어와 마구 물건과 음식들을 헤집어 놓는 악몽을 꾸는데, 이것은 집이라는 구조물로 말끔하게 계급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 집이 지어지기 전에 벌어진 일들을 죄의식처럼 끌어낸다. 이 영화에서 공포는 멀쩡한 공간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앞에 사실은 그렇게 치워져 버린 누군가가 있었다며 얼굴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어쨌든 올 여름 진격의 한국영화를 만들어낸 네 편의 영화가 모두 계급 혹은 사회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아마도 지금 현재 대중이 갖고 있는 계급 정서 혹은 갑을 정서의 반영일 게다. 작년 대선 때 화두로 떠올랐던 경제적 불평등이나 올 상반기에 그토록 논란의 화두가 되었던 불공평한 사법 정의 같은 문제들, 그리고 지금껏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갑을 관계의 문제가 봇물 터지듯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던 바로 그 정서 말이다. 올 여름 한국영화는 이러한 사회문제가 야기하는 대중정서를 장르라는 틀에 잘 엮어내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셈이다.

영화가 영화 내적인 힘만이 아니라 외적인 힘(현실)을 끌어왔다는 점에서 이는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현실을 바꿨다는 식으로 낙관할 일은 아닌 듯싶다. 그것은 계급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설국열차’마저 대자본을 투입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같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는 유통구조를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계급의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는 영화가 바로 그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흥행을 담보하는 현실. 이것은 대자본이 가진 놀라운 소화력(?)을 말해준다. 성공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판하는 메시지조차 상품화해낸다는 것.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올 여름 한국영화가 보여준 성과는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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