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특별사면 없이 지나간 광복절-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입력 2013-08-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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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역대 정부마다 국가 경축일의 단골 메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8·15 광복절과 석가탄신일에 여섯 차례나 특별사면을 했고 심지어 2007년 2월에는 대통령 취임 4주년이라고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특별사면한 사람은 422만 명에 이른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기간 동안 무려 552만 명에게 특별사면을 베풀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따가운 국민여론을 거스르며 특별사면을 강행했다는 측면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에 뒤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번 광복절에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국민정서에 반하는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들이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사면 없는 광복절을 맞이한 국민들은 짜증나게 하던 것이 맥없이 사라져 버린 후에 찾아오는, 그런 기분 좋은 허전함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면이란 원래 전근대적 사회에서 절대군주가 죄인들의 죄를 면해줌으로써 군주의 권위를 드높이던 제도였다. 삼권분립을 통해 정치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초월적 권한이 바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인 것이다. 이런 구시대적 잔재가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활개를 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면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요구된다.

과거 정부들은 언제나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사회화합, 국민통합 및 경제살리기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각종 불법, 부정부패, 비리로 나라에 누를 끼친 굵직한 정치인, 기업인, 권력자의 측근 및 친인척들이 대부분 특별사면자 명단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적 사면과 임기 내 범죄에 대한 사면은 하지 않는다”고 평소 공언하고도 특별사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1년에 있었던 광복절 특별사면을 들여다 보면 전체 사면자 2493명 중 95% 이상이 선거법 위반자이고 일반 형사범은 118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있는 일반 형사범 118명 중 59명이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지낸 사람들이었다. 사면된 일반형사범 중에 생계형 범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 특별사면으로 비리를 저지른 측근과 고위 정치인들도 무더기로 풀어주었다.

사회지도층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사회화합과 국민통합, 경제살리기라는 미명 하에 특별사면이라는 은혜를 베푼다면 ‘법 앞에 평등’과 같은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은 허사가 된다. 법이 이렇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니 권세 있는 자, 가진 자는 점점 더 법을 우습게 알게 되고 범법행위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진다. 이런 정부가 무슨 낯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법을 준수해달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식의 차별적 화합과 통합은 국민대통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 사이에 차별의식, 소외감, 좌절감을 야기하여 국민대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국민 사이의 진정한 화합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가진 자든 가지지 못한 자든, 권세 있는 자든 권세 없는 자든 모두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은 만인에게 공정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정부가 실천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자유롭고 정의로운 삶의 공동체로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힘들고 시간이 들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세운 원칙을 일관성있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유한한 정권이 역사 속에 영원히 살고 나라와 국민을 번영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없이 지나간 2013년의 8·15 광복절은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진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앞날에 기대를 걸게 하는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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