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의 너섬漫筆]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입력 2013-08-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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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삼겹살’로 유명한 코미디언, 고 김형곤씨. 그는 KBS2의 간판 코미디프로그램 ‘유머 일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코너를 통해 인기 코미디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비룡그룹 회장 역을 맡아 코너를 이끌었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와 웃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 표현 수위에 심기가 뒤틀린 군사정권의 코너 폐지 압박도 많았지만,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을 타고 명맥을 이어가면서 대표적인 시사풍자 코미디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당시 이 코너의 소재는 다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범양상선 회장 투신 자살사건이었다. 범양상선은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그룹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STX그룹의 자회사 STX팬오션의 전신이다. 범양상선의 비리가 양파껍질 벗겨지듯 나오면서 이를 풍자한 이 코너의 인기는 치솟았고, ‘좋습니다’, ‘잘 돼야 될텐데’등 여러 유행어가 회자됐다.

회장을 비롯, 중역으로 분한 여러 인간군상들은 충신보다 간신 캐릭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실을 철저히 반영한 인물배치가 아니었나 싶다.‘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을 외쳤던 김이사(김학래)는 이 코너가 배출한 대표적 간신 스타일. 회장의 처남으로 ‘밥먹고 합시다’를 되뇌이던 양이사(고 양종철)는 ‘낙하산 인사’를 빗댄 인물로 그려졌다.

우리 금융권도 회장님 전성시대다. 최근 회장이 교체된 KB금융, 우리금융, KDB금융, NH농협을 비롯해서 지방은행들도 금융지주사로 탈바꿈하면서 회장님이 많아졌다.

회장님들은 인사권을 유감없이 발휘, 전광석화처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능력중심의 인사’, ‘발탁인사’라는 자화자찬도 있지만, 노조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일부 회사에서는 앓는 소리가 나온다. KB국민은행장은 내홍 끝에 15일만에 출근길이 열렸다.

이른바 ‘금융 4대 천황’이 호령하던 시절, 한 금융지주사 회장 주재 회의에 배석했던 한 금융인은 회장의 카리스마에 한번 놀라고, 무기력한 계열사 사장들의 모습에 두번 놀랐다고 한다. 짐작컨데 회장의 서슬에 짓눌린 나머지 ‘예스’만을 남발했던 것 아닌가 싶다.

회장 이하 지휘체계를 정비한 금융지주사들은 이제 본격적인 진검승부를 벌일 참이다. 낙하산 인사든 발탁인사든, 이들이 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회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밖에.

이들이 일각의 우려대로 ‘좋습니다’를 남발하며 회장의 성정을 어지럽힐 수도, ‘회장의 종’을 자처하면서 권세에 빌붙을 수도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대신 ‘밥먹고 하자’며 무능의 극치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금융권의 ‘2013년도판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편은 시작됐다. 우리 회장님들이 어떤 퍼포먼스(경영)로 웃음(성과)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인사는 만사라는데 만사형통이 될지, 자승자박이 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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