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외이사]사외이사,‘권력가’인가…‘거수기’인가

입력 2013-03-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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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감시 의도 무색… 회장 추천권에 경영진 목줄 쥐고 사외이사 선임도 관여

# 국내 기업들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난 1998년. 최고경영자의 전횡을 감시·견제하고자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실효성과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간 400여 건의 안건 가운데 단 1건을 제외하고 모두 가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수기’관행이 여전한 금융권 사외이사 제도의 현주소다.

금융권 사외이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정권 교체에 따른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거취 문제와 함께 KB금융지주의 내홍 사태로 금융권 사외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실 KB금융 사태의 본질은 경영진과 이를 감시해야 할 이사회 간의 ‘권력다툼’에서 찾을 수 있다. KB금융 경영진과 이사회는 모두 정부를 뒷배로 갖고 있어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세력 균형에 균열이 왔고, 사외이사 선임 문제를 두고 치열한 헤게모니 싸움을 펼치는 과정에서 잡음이 표출되고 말았다.

KB금융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사외이사의 권한은 막강하다.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고 비판받는 지주회장을 능가한다는 말이다.

이는 사외이사가 제대로 역할만 한다면 얼마든지 지주회장이나 경영진의 전횡을 감시·견제하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를 두고 금융가의 숨은 권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금융권 사외이사의 가장 강력한 권한은 회장 추천권이다. 경영진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자기복제에도 충실해 사외이사 선임까지 관여한다.

KB금융 내홍 사태가 대표적이다. 미국 주총 안건 분석 전문업체인 ISS가 KB금융의 몇몇 사외이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냈고, 이에 발끈한 이사회가 경영진을 몰아붙였다. 우려와 달리 KB금융 주주총회에서는 경영진이 상정한 사외이사 선임 및 연임 안건이 무사 통과됐다. 사외이사의 우세승, 힘이 확인된 셈이다. KB금융 사외이사 중 7명은 연임됐고, 1명은 신규 진입에 성공했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권한과 힘은 크고 세다. 하지만 책임은 작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경영실적이 나쁘면 경영진은 이에 책임을 지게 되지만 사외이사가 책임지는 경우는 드물다. 경영진의 실정을 견제해야 할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화살을 피해 가는 게 현실이다.

사외이사는 때론 견제 대상인 경영진과의 공존을 모색하며 수명(임기) 연장을 꾀하기도 한다. KB금융 이사회는 경영진으로부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들의 재선임 전망을 직접 보고받은 후 경영진의 노고를 치하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공존공생’은 사외이사가 ‘거수기’화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간 처리한 안건 400여 건 중 부결 안건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사전 조율을 끝낸 것으로 이사회 통과는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사실상 허례허식인 셈이다.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2010~2012년까지 최근 3년 동안 106개의 안건을 상정해 모두 가결했다. 외환은행 인수와 미국 교포은행 인수, 자회사 유상증자 등 굵직한 안건에 대한 사회이사의 반대는 없었다.

우리금융지주도 이 기간 107개 안건을 처리하면서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를 전혀 던지지 않았다. 이 기간 98건의 안건을 가결한 신한지주는 2010년 10월 ‘신한사태’ 특별위원회 설치 안건을 올릴 당시 반대표가 4표 나왔지만 안건 가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이사회 통과율이 99%를 넘다 보니 경영진과 이사회의 충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외이사의 경영진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4대 금융지주 이사회가 최근 3년간 부결시킨 유일한 1건은 바로 KB금융이 지난해 추진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안건이다. 결과적으로 이날 경영진과 이사회의 갈등은 ISS 보고서 파문을 낳는 불행의 씨앗이 됐다.

KB금융 이사회는 이날 부결로 금융권 사외이사의 존재감을 드높였지만 감정싸움으로 치닫으면서 결국 경영진과 이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철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자 사외이사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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