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채용시대 지났다]달라지는 기업 채용제도 들여다 보니…

입력 2013-03-14 10:36 수정 2013-03-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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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항목ㆍ인적성 검사 빼고… 분야별 재주는 더하고

▲지난 2월 22일 경남 창원대학교 체육관에서 경남도와 창원대 공동으로 열린 취업박람회. 이날 오후 참가자들이 '이력서·자기소개서 클리닉'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어두운 터널과도 같았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신분을 버텨낸 김모(21)씨는 지난해 서울에 있는 모 여자대학교에 합격해 2학년이 됐다. 김씨는 작년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그동안 공부에 바친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김씨가 느끼는 설렘은 잠시였다. 함께 입학한 동기들이 하나 둘 ‘도서관 죽순이’로 거듭나면서 일찌감치 자리 쟁탈전에 나선 것이다. 김씨가 ‘벌써부터 저렇게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과에는 지난해 하반기 취업에 실패한 ‘대학교 5년생’ 선배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난 김씨는 남들이 많이 본다는 토익책을 구입했지만 어느새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김씨는 정신없이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취업에 실패해 유령처럼 학교를 떠도는 선배들같이 될 순 없다고 다짐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도서관에 자리 잡은 김씨의 책상에는 토익책과 전공서적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대학교 신입생들의 마음가짐은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학교는 이미 기업 학원으로 전락해 ‘스펙’(Specification)을 높이기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특히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객관화한 수치를 의미하는 스펙은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취업카페나 관련 사이트에서는 공채를 시작한 기업에 자신의 스펙이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이나 또는 해당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스펙을 묻는 글을 쓰기 위한 게시판을 따로 마련해 둘 정도다.

취업준비생들에게 좋은 스펙은 연봉이 높은 대기업 입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8월 돈을 받고 토익·텝스 시험에 대리 응시한 미국 유학생들과 대리시험을 의뢰한 공무원 및 교사 등이 적발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토익 대리시험 봐준다”는 글을 올린 뒤 대리시험을 치른 20대 일당이 기소됐다. 이들은 대리시험 1회당 45만~300만원을 받고 카카오톡을 이용해 답안을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스펙을 높이기 위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또 자신의 낮은 스펙으로 인해 좌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정부도 오래전부터 획일적인 채용제도의 문제를 살피고 해결방안 마련에 나서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9일 각 기업 인사담당 임원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채필 전 노동부 장관은 기업들을 상대로 “채용 주체인 기업에서 청년들이 막연하게 스펙 쌓기에 몰두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품고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능력 중심의 채용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천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정부가 내놓은 ‘스펙란’ 없는 입사지원서는 이런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했다.

더 효율적인 채용제도를 원하는 기업들도 정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지닌 인재를 뽑는 방향으로 채용제도를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4일 현대자동차는 올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부터 사진란과 부모님 주소, 제2외국어 구사능력, 고교 전공 표시란 등 ‘스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항목 일부를 삭제한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신입사원의 10%를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인재로 채우기로 했고, 한화그룹은 맞춤형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인·적성 검사를 제외했다. 또 포스코는 장교출신을 우대하고 삼성그룹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인재를 선발할 방침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기업의 ‘열린 채용’이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신입 구직자 618명을 대상으로 기업의 열린 채용 소식을 접하고 난 후 기업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48.4%가 그 전보다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또 77.7%는 입사지원 시 열린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에는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관심이 간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전체 구직자 중 64.6%는 자신이 서류전형을 통과하는 데 열린 채용이 일반 채용보다 유리하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이런 기업들의 변화에 “경력들은 일자리에 투입돼 어떤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인지를 기대하지만 신입은 회사에 얼마나 잘 적응해 여러 사람과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본다”며 “토익점수가 높다고 실무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고 해당기업에서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부분도 아니다. 스펙이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커지면서 실질적으로 일하면서 실무에서 얼마나 능력을 보이는지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면접을 강화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요즘은 합숙면접 등 면접을 강화해 역량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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