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연가시’의 섬뜩한 현실…“진짜 일어날 수 있다?”

입력 2012-07-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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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화 ‘해운대’의 큰 성공이 있었지만 재난 영화는 아직도 국내에선 낮선 장르다. ‘해운대’의 경우 빌딩만한 쓰나미의 압도적 비주얼을 앞세워 무려 1100만을 끌어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할리우드에 비해 자본력에서 분명히 몇 수 아래인 국내 영화 시장에서 ‘해운대’의 비주얼은 실현 가능한 한계점으로 정립됐다. 이는 ‘(돈)들인 만큼 나온다’는 블록버스터 제작 공식의 전형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결국 ‘재난 영화’는 확실한 틀(자금력)이 기본 전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을 조금만 틀어본다면 변주의 틈바구니가 의외로 커진다. ‘재난 영화 = 비주얼’ 이란 일반화의 오류를 증명하기 위해선 스토리의 ‘현실성’과 ‘설득력을 갖춘 설정’이다. 지난 5일 개봉한 ‘연가시’는 결코 쉽지 않은 이 명제를 너무도 충실하게 따른 꽤 그럴듯한 상업영화다.

스토리 소스는 변종 기생충이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이 흡사 좀비와 같이 변하며 일대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한 줄 정리다. 한 줄 정리를 좀 더 확장해 보자. 변종 기생충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기가 그려질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재난 영화의 콘셉트에 집중한다면 쉽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이 일으키는 아비규환을 ‘충분히 가능하다’고 관객들을 설득시키면 된다. ‘연가시’는 이 두 가지를 적절히 혼합해 나쁘지 않은 볼거리를 만들어 냈다.

우선 ‘연가시’가 궁금하다. 실제 존재하는 기생충이다. 곤충에 기생한 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숙주를 조종해 물에 뛰어들어 자살케 만든단다. 변종이 생겨서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면’이란 상상력으로 영화는 출발한다. 정말 가능할까. 영화를 보면 “진짜?” 혹은 “정말””이란 두 가지 감탄사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터져 나올 것이다.

영화의 첫 번째는 제약회사 직원인 주인공 재혁(김명민)가족의 평범한 일상생활이다. 재난 이후의 대비 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이다. 한때 박사였던 재혁은 동생 재필(김동완)의 꾐에 빠져 주식에 손을 대 전 재산을 날린다. 오로지 망가진 가정을 일으켜기 위해 영업에만 매달린다. 일상에 지친 그는 가족을 돌보는 것조차 잃어버렸다.

평범한 재혁의 눈앞에 어느 날 갑자기 온 세상 사람들이 이상 증세를 보인다. 그 안에 자신의 가족들도 있다. 영화 시작 불과 10여분 뒤부터 ‘연가시’는 급격하게 몰아친다. 여기서 두 번째 포인트가 시작된다. 재난 영화로는 특이한 공포의 현실성 극대화다.

영화 속 연가시 중독자들은 기존 좀비 영화 속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식귀(食鬼)에 가까운 식탐과 뒤이어 찾아오는 비정상적인 구갈증상으로 이성은 사라진 상태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싱크대에 가득 찬 물을 보고 고개를 처박은 채 물을 들이키는 모습이나 횟집 수조에 고개를 파묻은 채 죽는 장면은 ‘진짜 저럴 수도 있을까’를 넘어 ‘혹시 나한테도’란 공포 그 자체다. 재난영화의 필수적인 비주얼을 색다르게 변주시킨 부분이다. 시각적 압도가 아닌 시각을 통한 공감으로 진화시켰다.

이런 현실성을 기반에 둔 공포심은 재혁의 뜀박질을 통해 관객들의 심박 수도 증가시킨다. 고난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재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뛰어다닌다. 연기시에 중독돼 죽음을 앞둔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약을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손에 들어온 약은 그를 비웃듯 매번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재혁은 끝까지 포기를 안한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이런 재혁을 김명민이 연기한다. ‘연기 본좌’가 주인공이라면 결과는 간단하다. 재혁의 북치고 장구치고가 예상된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시선을 시간이 지날수록 극중 재혁의 아내인 경순(문정희)에게로 쏠린다.

배우 관점에서 보더라도 ‘연가시’의 줄기는 두 가지다. 재혁이 스토리의 외부를 담당한다면 내부는 온전히 경순의 몫이다. 연가시에 감염돼 스토리 중반 이후 수용소에 아이들과 갇힌 경순은 극단을 오르내리는 감정의 진폭을 너무도 그럴 듯하게 연기한다. 순간적으로 이성에서 비이성의 단계로 넘어가는 이른바 ‘스위치 연기’에 탄성이 나올 정도다.

배우들의 호연과 그럴 듯한 설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연가시’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이 모든 스토리의 배후가 너무도 섬뜩하기 때문이다. 의료 대란과 신종플루로 몇 차례 고비를 경험한 우리 내 입장에선 오싹함을 넘은 한기가 피부를 덮을 정도다. 더욱이 극중 ‘연가시’ 창궐 통로가 물이란 설정은 여름 시즌 개봉과 맞물리며 주목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한 전문가의 인터뷰 내용도 ‘연가시’의 현실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얘기다.”

‘연가시’는 재난 영화란 장르적 핸디캡을 꽤 영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영화다. 비주얼과 스토리, 여기에 재난 공포의 현실성까지. 상업영화의 미덕인 재미 측면에서 올해 개봉한 그리고 개봉할 영화 중 가장 확실한 수작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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