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보이지 않는' 수출

입력 2012-07-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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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SK그룹 고문

중국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판매 현황에서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중국어판이 지난 2월 출간 이래 5주 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을 배출한 ‘공청단’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는 등 사회적 반향도 크다.

K팝 열풍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은 아예 기존의 국가와 국민의 개념을 바꾼 가상국가를 선포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문화와 정보기술(IT) 산업의 결합이 새로운 국가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있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문화수출은 이뿐 만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에디오피아, 탄자니아, 르완다, 카메룬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남미 국가 등에 전파되고 있다. 이북의 천리마운동과 비교하면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이 어떤 성과를 내었는 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이자 삶의 양식이다. 대한민국을 신생독립한 후진국으로 인식하던 것이 불과 수십년 전인데 이러한 문화수출의 성과를 접하게 되면 실로 가슴 뿌듯하다. 과연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씨는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우리를 주목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우리의 경제성장 덕분이고, 특히 삼성 혼다 도요타 등 아시아 대기업들에 K팝이 빚을 지고 있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문화를 알리는 데는 그 문화의 매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반이 되는 국가의 경제력이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더욱 유리하다는 뜻일 테다.

사실 기업의 해외사업행위 자체가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과 최대도시인 오클랜드를 방문하면 굉장히 낯익은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버스를 이용할 때 승객들이 우리나라처럼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모습이다. 이 시스템을 만든 기업이 서울시 교통카드시스템을 구축했던 LG CNS다. 서울에서 7000km나 떨어져있는 이국땅의 출퇴근 모습을 우리 식으로 바꾼 것이다.

기업의 경영이념이 해외 기업에 심어지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말레이시아 MMC그룹에 경영시스템 이론과 교육자료 등을 제공하고 경영시스템을 설명하는 강사진도 파견키로 했다. GE의 백만 PPM 이니 Toyota Way니 하는 선진기업 경영시스템을 공부하던 우리가 해외 기업에 우리 경영방식을 전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2009년 방한했던 압둘 말렉 알제리 수자원부 장관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알제리에서 ‘죽음의 강’이라 불리던 ‘엘하라시 하천’을 살리는 것이었다. 당시 청계천과 양재천을 보고서 크게 감명받았던 장관 일행은 2011년까지 3년간 한국의 수도권 일대 하천을 샅샅이 훑고 다닌 것은 물론 유럽의 하천도 모두 답사했다. 3년간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대한민국 건설업체에 맡기자’는 것이었고 대우건설은 지난 6월 5억달러 규모의 엘하라시 하천복원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SI업체들이 IT강국을 만들었고 IT강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경탄해 하는 해외에 우리 모습을 수출했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기업문화를 발전시켜왔고 이런 기업문화에 반한 해외 기업인들에게 경영기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고속성장으로 망가졌던 환경을 복원하기 위한 기업의 기술성과가 이제는 다른 나라의 환경살리기에 기여하게 됐다.

이쯤되면 과연 기업이 수출하는 게 단순히 자사 로고가 박혀있는 제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의 역할을 너무 평가절하해 오지는 않았나.

뉴질랜드 웰링턴 시민들은 스마트카드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LG CNS보다는 서울을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SK의 경영체계가 잘 전수되면 말레이시아 기업인들은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알제리 하천이 복원되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의 사람들은 대우건설 보다는 서울의 여러 하천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기업의 글로벌 성장이 결국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이다.

요새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진정한 경제의 민주화는 우리의 삶을 효율적이고 퐁족하게 만든다는 목적 하에 기업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하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이 결국 우리 문화를 가장 본질적이고 오랫동안 전파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자꾸만 우리의 자산을 까먹어야 달성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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