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의 그늘, “밤새 일하고 성희롱까지…”

입력 2012-07-03 16:25 수정 2012-07-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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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에 걸린 92세 할아버지를 자택에 찾아가 돌보고 있는 재가 요양보호사 배모(52·여)씨. 오전에 할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한 뒤 약을 챙겨 드리고 부엌에 돌아와 가족들이 부탁한 설겆이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를 산책시키고, 간단한 체조를 함께 하고 목욕을 시키는 일을 하던 배씨는 요즘 마늘까기, 밥짓기, 빨래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배씨는 “나이드신 할머니가 집안일을 부탁하면 거절하기도 힘들다”면서 “요양보호사 중에는 김장을 돕거나 밭일까지 거드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환자를 돌보는 업무 외에 집안의 잡일까지 맡으면서 배씨가 받는 월급은 고작 56만원이다.

시설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의 근무 조건은 더 열악하다. 윤모(55·여)씨는 요양시설에서 하루 24시간을 일하는 격일제 야간 근무자다. 근로계약서에는 24시간 중 수면시간을 포함해 11시간이 휴무 시간이라고 나와있지만 현실은 근로계약서와 다르다.

밤낮 없이 환자들의 자세를 바꿔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면 잘 시간은 커녕 앉아있을 틈도 없다. 이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 윤씨가 받는 월급은 125만원 수준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이용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저임금과 폭언, 성추행 등에 시달리고 있어 처우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치매나 중풍 등으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노인 환자가 요양보호사를 집으로 부르거나 요양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이후 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은 21만4000명(2008년)에서 지난해 32만5000명으로 4년새 11만명이 증가했다. 장기요양서비스에 쓰이는 돈도 같은 기간 5731억원에서 2조7714억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장기요양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국민인식도’에 따르면 국민의 93.7%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필요하고 응답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경우 제도를 이용할 의향이 있는 국민도 9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기요양서비스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은 전체의 5.7%로 OECD 평균(10%)의 절반 수준이다.

더욱 큰 문제는 장기요양보험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의 처우 문제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12시간 교대 또는 24시간 격일교대 등 2교대 근무형태가 41.8%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국여성노동조합에 따르면 시설 요양보호사 1인이 실제로 돌봐야 하는 입소자 수는 주간에는 평균 9.7명, 야간에는 평균 16.5명으로 나타났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조사 결과를 봐도 요양보호사의 처우 문제는 심각하다. 협회에 따르면 재가 요양보호사 중 58%가 손님접대(24%), 김장(23%), 농사일(14%) 등 요양보호 서비스 이외의 업무를 강요 받았다고 응답했다.

폭행이나 폭언과 같은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은 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80.7%,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30.4%로 나타났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시설 요양보호사의 33.0%, 재가 요양보호사의 16.0%가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한 요양보호사는 “치매 환자도 성적인 욕구는 있어 엉덩이를 치거나 가슴 만지는 일도 자주 경험한다”며 “여성들은 성희롱을 하지 않지만 심한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일 요양보호사의 노동 인권을 개선하라며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 등에 권고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의 최수복 연구원은 “요양보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돌보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면서 “보호사들의 근로 인권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과 정부의 감시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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