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생생활활’ 막바지 준비 박철수 감독…“차기작은 제자와”

입력 2012-03-19 14:54 수정 2012-03-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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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이란 기자)
영화감독 박철수. 1979년 영화 '밤이면 내리는 비'로 데뷔해 오랜 시간 한국영화계를 지탱해 준 여러 기둥 중 하나다. ‘안개기둥’(1986) ‘접시꽃 당신’(1988) ‘물위를 걷는 여자’ ‘오세암’(1990)을 거쳐 ‘301 302’(1995) ‘학생부군신위’(1996) ‘가족시네마’(1998)등 걸출한 수작이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때 잠시 연출을 내려놓은 뒤 여러 후배 감독들의 작품에 기획 및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지난해 김태식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다. 비록 출연 배우 오인혜의 파격노출이 언론에 집중됐지만, 충무로 노장인 박철수의 컴백은 분명 의미가 남달랐다.

이달 초 강남의 한 편집실에서 박 감독과 만났다. 신작 ‘생생활활’ 막바지 편집에 짬을 낼 틈이 없었음에도 인터뷰에 응해줬다.

박철수하면 떠오르는 두꺼운 뿔테 안경과 청바지 차림에 더벅머리 헤어스타일. 현장을 주름잡는 카리스마 모습 그대로 환갑을 훌쩍 넘긴 그는 인터뷰 내내 ‘살아있는(생생) 활(활활)기’ 그 자체였다.

너털웃음과 함께 “올드 에이지(구세대) 노땅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라며 농담을 건내왔다. ‘겸손이 심하다’고 화답하자, “이 나이에 뉴 에이지라고 말하고 욕먹으면 책임질 건가”라며 다시 농담으로 받아쳤다.

박 감독은 긴 작업에 지친 듯 담배 한 개 피를 꺼내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아 들였다. 연기가 사라질 때 쯤 ‘생생활활’ 얘기부터 꺼냈다. 상당히 독특한 형식의 영화란 소문이 크다.

그는 “아마도 ‘생생활활’과 같은 형식의 영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없었을 것”이라며 “전체 구조가 스무 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다”고 소개했다. 출연 배우도 챕터 당 2명씩 40여 명이 넘는다. 전작에 출연한 오인혜부터 김성민, 이덕화, 임백천, 오광록 등 걸출한 스타들이 이름을 올렸다. 내용 설명을 부탁하자 “상상력의 극치가 담겼다”고 설명한다.

박 감독은 “‘붉은 바캉스…’에서 함께 한 오인혜가 기자 역할로 나온다. 기자가 세계 여러 인물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이어질 것이다”면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나오고 하나님도 나온다. 아주 색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기대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워낙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기에 출연 배우들도 앞선 설명처럼 수십 명에 달한다. 이덕화는 1990년 ‘물위를 걷는 여자’ 출연 이후 박 감독과 22년 만의 조우다. 앞서 언급한 스타들 외에도 깜짝 놀랄 스타들이 영화에 포진했다고 귀띔했다.

(사진=고이란 기자)

박 감독은 같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신인 발굴의 귀재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붉은 바캉스…’의 주연 오인혜를 단숨에 신데렐라로 끌어올렸다. 활동 초기작으로 눈을 돌리면 황신혜와 최명길 방은진이 그랬다. 소위 ‘보는 눈’ 또는 ‘촉’이 좋았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박 감독은 “비결은 무슨”이라며 손사래부터 친다. 다만 한 가지 정해 놓은 규칙은 있다고. 비어있는 배우들을 선호한다는 것. 그는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닌 비어 있다는 느낌이 오는 배우들이 있다”면서 “그 비어있는 공간을 감독의 연출로 채우는 맛이 아주 괜찮다”고 설명한다.

그런 작업에 재미를 느낀 뒤부턴 이른바 주류 영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보일 수 있는 영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박 감독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녹색의자’(2003)는 국내 팬들과 해외 팬들의 반응 차가 극과 극으로 나뉜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는 ‘녹색의자’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에 안타까움을 먼저 전했다.

박 감독은 “‘녹색의자’가 국내에선 저평가 됐지만 해외에선 상당히 큰 주목을 받았다. 선댄스와 베를린에서는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은 작품이었다. 내 입으로 내 작품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식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너무 커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올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디센던트’를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녹색의자’의 리메이크를 연출할 것이다. 기대가 크다”고 귀띔했다.

‘녹색의자’와 더불어 ‘301 302’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준비 중이란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정받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수 있겠다는 질문에 박 감독은 “난 지금까지 손해 본 장사는 안했다”면서 “누군가 날 ‘해외파 감독’이라고 하더라. 국내보다 해외서 더 팔아먹으니 말이다”며 웃는다.

▲박철수 감독과 제자인 김진희 시나리오 작가

그는 올해를 기점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변신이 있을 것이라 선언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예술적인 시도를 벌여 온 노장이 지극히 상업적 내러티브로 회기를 선언했다. 제자이자 현직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인 후배의 작품을 차기작으로 공개했다.

인터뷰 중간 쯤 박 감독의 편집실로 찾아온 김진희 작가는 과거 박철수 필름을 통해 영화에 입문한 뒤 2000년 박 감독 연출작 ‘봉자’에 조연으로 출연한 바 있는 색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김 작가는 “처음엔 배우로 캐스팅하시더니 내가 쓴 단편 시나리오를 보시고 ‘글이 참 맛난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 한 마디로 내 인생에 변화를 주신 분이 박 감독님이다”며 첫 인연을 설명했다. 이어 “언젠가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감독님께서 연출하시는 날이 오리라 기대는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꿈만 같다”는 말을 전했다.

박 감독은 “김 작가와 처음 만났을 당시 다들 날 어렵게 대했지만 이 친구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내게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래서 더 정이 갔다”며 “남들은 김 작가님이라 부르지만 난 이 친구를 배우로 만났고 아직도 내 눈엔 배우로 보인다.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연기를 하는 건 간혹 있는 일이지만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글도 잘 쓰는 건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제자를 칭찬했다.

함께 할 작품 설명에 대해 김 작는 “오로지 박 감독과의 작업이 답”이라며 “감독님의 ‘접시꽃 당신’을 보며 영화의 꿈을 키웠기에 박철수 필름에 들어간 것 역시 당연한 운명이었고 지금 작품은 ‘접시꽃 당신’을 보던 시기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든 내용이다. 그 누구보다 박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야 영화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심스럽게 연출을 부탁드렸는데 시나리오를 읽으시고 흔쾌히 받아 주신 그 순간은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박 감독은 “김 작가의 작품은 우리의 관계를 떠나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임팩트가 있다”며 “제자가 쓰고 스승이 연출한 꽤 괜찮은 영화로 다시 돌아오겠다. 물론 ‘생생활활’도 기대해 달라”며 활기찬 웃음을 보였다.

여전히 충무로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 감독과 떠오르는 신세대 작가의 의기투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또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사진=고이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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