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아닌 ‘비혼’…독립된 주체 꿈꾼다

입력 2012-01-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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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결혼제도 거부하는 비혼

“지금 세상에서는 결혼하고 있는 쪽이 모든 면에서 유리합니다. 모든 것이 결혼제도를 지키는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 <결혼제국>, 우에노 치즈코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성의 초혼 연령은 1990년 24.8세에서 2010년 28.9세로 많아졌다. 특히 30~35세 미혼여성의 비율은 1995년 6.2%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67.8%로 크게 증가했다. 40대 미혼비율도 1995년 1.1%에서 2010년 3.3%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결혼을 필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택으로 보는 여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결혼 대신 다른 삶을 그리는 비혼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꿈꿀까. 비혼운동을 하고 있는 이명란 언니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만나 비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명란 언니네트워크 사무국장
-‘비혼’ 의 의미는

▲ 비혼자들이 실제로 많이 늘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비혼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나 독립적인 상태의 여성을 가리켰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혼 의외의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비혼자들의 증가는 결혼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일종의 세대 문제가 포함된 것으로 어머니 세대는 남자처럼 똑같이 경제 활동을 하고 집에서 가사활동을 전담하는 슈퍼우먼의 역할을 수행했다. 요즘 여자들은 이러한 이중적인 역할 부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대다.

결혼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 않는다. 비혼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결혼 이외의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비혼과 미혼 사이

▲ 미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미혼이란 단어는 사람을 ‘결혼한 사람’과 ‘결혼을 언젠가 할 사람’ 이렇게 두 부류만 구분한다.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미혼이라는 단어는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용어다. 결혼 이외의 나의 독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미혼, 기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비혼이다.

결혼이 무엇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지는 제도인가? 결혼 테두리 안에서 살아야만 정상인가? 이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물론 비혼이라는 용어의 중심 축은 여전히 ‘결혼’이다. 다른 용어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아주 유용한 단어다.

- 결혼을 왜 거부하나

▲ 왜 결혼을 하는가? 결혼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제도 문제의 총합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혈연주의, 부계혈통주의, 결혼·출산 등 정해진 생애주기에 따라야 하는 압박 등 남자와 여자 모두를 구속과 억압에 가둔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결혼제도 속 부과된 역할로 인식된다. 재영이 ‘어머니’, 김 변호사 ‘부인’, 황부장 ‘딸’ 등의 역할로 여성의 정체성이 규정된다.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가사와 양육 등의 돌봄 노동은 오롯이 여성의 것으로 치부된다.

<언니, 집을 나가다>라는 책에 결혼한 동거 커플 이야기가 나온다. 동거할 때는 서로의 삶과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주다가도 결혼 뒤에는 며느리, 아내로서의 역할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양육과 가사를 거부하면 ‘이기적인 여자’가 되고 양육과 가사에 집중하면 ‘나의 삶’이 없어진다. 여자의 삶은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변화가 너무 극적이다.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온전히 독립적이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 비혼이 결혼의 대안?

▲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비혼자들 가운데 애인이 아닌 다른 비혼자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혼자들의 공동체 운동이나 그에 대한 아이디어, 기획은 이제 나오는 단계다. 공동체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비혼자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서 돌봄 시스템과 관계는 혼인과 혈연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데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비혼자들은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경제적 독립과 공간적 독립. 비혼자들에게 주거권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독립의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은 35세 미만 미혼인 경우 받을 수 없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공동주택과 비혼자들이 생각하는 공동주택은 다르다. 비혼자들의 공동주택 수요가 늘어나지만 공급은 전무하다고 봐야한다.

- 다른 나라의 비혼운동

▲ 비혼운동의 등장은 결혼에 대한 구속력, 부계혈통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는 한국 사회의 특정한 맥락에서 봐야한다. 한국은 유독 결혼에 대한 구속력, 부계 혈통에 대한 압박이 강한 사회다. 태국에서 만난 스페인 동반자(결혼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아 함께 사는 커플)에게 지금 하는 일이 ‘비혼 운동’이라고 말하자 무척 놀라워했다. 그는 왜 여성이 꼭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운동하냐고 되물었다.

모든 사람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존재하는 사회는 억압적인 사회일텐데 그 전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이 필요할만큼 한국이 억압적인 상황인가라는 의문을 담은 말이다. 이 말은 반대로 한국 사회가 결혼한 구성원 중심으로 제도가 짜여있고 이런 삶에서 벗어난 사람에 대한 상상력이나 관용도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비혼에 대한 오해

▲ 우리가 만든 비혼 선언문을 보면 ‘따로 또 함께, 온전히 혼자 피는 꽃이지만 우리는 섬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비혼 선언을 했다고 영원히 혼자 살겠다는 말도 아니고 가족과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독립적인 주체로 살겠다는 것과 혼자 살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머니, 딸, 아내로서의 역할 등 가족과 결혼 제도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었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이외에 내 자신으로 온전히 존중받고 스스로 하나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누구와 함께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 비혼자들은 이 질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비혼선언문

◆언니테트워크 = ‘언니네트워크(http://www.unninet.net)’는 2004년 11월 27일에 탄생한 여성주의 포털 사이트다. ‘언니’와 ‘네트워크’의 합성어인 언니네트워크는 여성들의 연대, 지지,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다. 이 언니네에서 기획하는 사업들이 몇 가지 있는데 ‘비혼 프로젝트’가 그 중 하나다. 비혼 프로젝트는 2007년 이래 언니네의 주요 의제로 비혼식과 비혼여성축제를 주최한 바 있다.

지난해 2월부터는 ‘비혼열전’이라는 칼럼을 통해 역사 속 비혼 이야기를 찾아 연재하고 있다. ‘릴레이 비혼 선언’이나 ‘비혼인들의 밤’을 통해 이슈를 공유하기도 하고 비혼 공동체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누고 있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의 주체성 고민과 비혼이 등장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열린 강좌’는 비혼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비혼을 꿈꾸는 사람이 비혼 멘토와 소통하는 ‘비혼 파자마 워크숍’ 등은 비혼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지난해 7월에 진행한 ‘비혼PT나이트’는 큰 호응을 받았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비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삶의 태도와 노하우, 실천 사례등을 공유하며 끈끈한 동지애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니네는 그야말로 비혼인들의 네트워크 그 자체다.

언니네는 올해도 비혼자들을 위해 달린다. 연대단체인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하 가족모임)’과 함께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비범하지 아니한家>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족모임과 컨소시엄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 재단의 우수사업으로 선정됐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비혼여성공동체, 한부모 가족, 미혼모 가족, 동성커플 등 다양한 가족들을 다룬다.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찬란한 유언장 워크숍, 비정상가족들의 사례발표가 이어지며 오는 5월에는 사진 전시회 및 스토리북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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