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식대로 한다" 뿔난 '왕회장'…국산차 첫 모델 '포니' 탄생

입력 2011-10-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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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달려온 한국자동차]<18>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1971년 미국 포드와 신차개발을 논의해왔던 현대차는 협상결렬로 화가 치밀었고 결국 독자노선을 결정한다. 1975년 포니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계기였다.
1971년 가을 어느날, 서울 무교동 현대 사옥 7층 회장실.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난데없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그 자리에는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을 비롯한 비서진이 배석했다. 맞은 편에는 미국 포드를 대표해 한국에 날아온 실무책임자와 변호사들이 앉아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육두문자만 쓰지 않았을 뿐 회장실이 떠나갈 듯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당신네들…당신들 정말 좀팽이야! 당신네들하고 차(車)사업 안할 꺼야. 우리가 ‘걱정하지 마라, 운영자금에 대해서는 우리 은행에서 책임지겠다’고 각서까지 써줬으면 됐지. 그걸 못 믿어서 한국에 몰래 들어와 우리 신용도까지 알아보고 돌아다녀?”

잔뜩 화가 치밀어 올랐던 정 회장의 무서운 기에 눌린던 포드 실무단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변덕 심한 당신네들하고 같이 일 안 하는 게 낳겠어. 이러다간 내 신용까지 떨어져서 다른 사업도 못하겠어! 당신들하고 일 안 해! 우린 우리 방식대로 할꺼야!”

정 회장은 배석한 정세영 현대차 사장의 통역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정세영 사장의 마지막 통역은 “we will go on it alone”이었다. 우리 방식대로 한다. 이 발언이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2005년 78세로 타계한 정세영 회장. 포니 개발을 주도한 그는 한국자동차 역사에 ‘포니 정’으로 남아있다.
◇“너희 포드하고는 일 못하겠어, 나가!”=1967년 현대건설 자동차사업부로 시작한 현대차는 미국 포드의 코티나를 들여와 조립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조립생산이 아닌 개발로 눈을 돌린 현대차는 포드의 도움이 절실했다. 자체 모델이 있어야 수출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드의 자존심도 만만치 않았다. 포드는 “부품을 아시아 각국으로 나누면 효율성이 높다”며 “전장품은 필리핀, 실내는 말레이시아가 만들고 엔진은 한국에서 만들면 된다. 컨트롤은 호주에서 하고…”라며 고집을 피웠다.

이래저래 말을 바꿔가며 기술공유를 회피했던 포드는 협상 막판에 현대의 신용도를 트집잡았고, 정주영 회장은 진노했다. 이것은 “우리끼리 차 한번 만들어보자”로 마음을 굳힌 계기가 됐다.

포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차를 만들어보겠다는 현대차의 욕심은 만 2년여 만의 협상 종결로 물거품이 됐다. 협상을 진행해 온 정세영 당시 사장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일본 미쓰비시와 이태리로 사람을 보내 새차 개발을 추진했다.

요즘은 3년이면 새 모델을 하나 개발할 수 있지만, 당시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독자모델의 개발과 생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흡사 우리 자체적으로 우주선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정세영 사장 “고유 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우린 죽는다”=포드 실무단을 쫓아내고 큰소리를 쳤지만 현대차는 사실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미국 GM이 신진자동차와 합작해 GMK(GM 코리아)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방을 송두리째 빼앗길 판이었다.

현대차가 고유모델을 고집했던 이유는 오로지 수출 때문이었다. 일본차나 미국차를 들여와 조립해 팔기는 쉬웠다. 그러나 내수시장만 바라봐야 했고 수출은 불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얼마 안되는 내수 시장을 노려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간 투자금 회수는 커녕 파산에 몰릴 상황이었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큰 돈을 들인 차 공장에서 이득을 남기려면 수출 만이 살길이었고, 이를 위해선 독자모델이 필요했다.

반면 당시 현대건설 자동차사업부 출신의 간부들은 정주영 회장의 고유모델 개발계획을 앞다투어 만류했다.

코티나를 조립생산하면서도 그 차의 설계도면 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차 하나 분해하면서 설계도를 금세 만들어내는 ‘역(역)설계’의 개념도 없을 때였다.

회사 간부들의 끝없는 만류를 설득하고 달래던 정세영 사장도 마침내 폭발했다. 고유모델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고유모델 안 만들면 우린 죽어! 난 회사를 좀 살려야겠어. 반대할 사람은 비켜서서 구경이나 해! 나는 할 테니까!”

이른바 포니정으로 불렸던 정세영 회장의 의지가 한층 공고해진 시점이었다.

◇첫 독자모델은 해치백 스타일의 포니=그렇게 등장한 것이 현대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주해 디자인을 맡기고 미쓰비시 엔진을 사들여와 울산공장에서 조립한 차다. 고유모델인 덕에 어디에 수출해도 눈치볼 일이 없었다.

현대차는 마침내 1974년 이태리 토리노 모터쇼에 양산형 고유모델 포니를 내놓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인 1975년 포니는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수출도 시작했다. 에콰도르가 시작이었다. 몇 백대 안됐지만 그래도 좋았다. 수출은 현대차에게 꿈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포드의 변덕으로 2년여를 소비했지만 현대차는 6년 여의 우여곡절 끝에 해치백 스타일의 포니를 출시했다.

그렇게 36년여가 흐른 2011년 10월, 현대차는 유럽전략형 해치백 2세대 i30를 출시했다. 이제 현대차는 그때 그 시절처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차 한대쯤 뚝딱 개발해 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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