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중대 전환기마다 '새 남자'를 선택했다

입력 2011-06-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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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남자들]②삼성그룹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

갑작스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윤리경영 선포였다. 지난 7일 이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삼성그룹 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부정부패 척결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삼성그룹은 대대적인 인적쇄신도 뒤따랐다. 논란을 처음 일으킨 책임을 지고 삼성테크윈의 오창석 사장이 사퇴했고, 감사팀장과 인사팀장이 바뀌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번 ‘윤리경영’선포를 계기로 오너가 선택한 새로운 ‘남자’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 이번 뿐만이 아니다. 신경영 선언, 삼성 비자금 사태, 이건희 회장 복귀 등 그룹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에는 항상 퇴장하는 오너의 남자가 있었고 새로운 남자들이 뒤따랐다.

▲미래전략실 수장을 맡고 있는 김순택 부회장이 지난 9일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건희 회장 뒤에 서 있다. 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은 최근 임명된 정현호 감사팀장.
◇그룹 전환점 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남자= 이건희 회장의 이번‘윤리경영’선포는 지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포와 맞먹는 큰 사건이다. 역시 새로운 오너의 남자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윤리경영 선포 후 새롭게 경영진단팀장(감사팀장) 자리에 앉은 정현호 삼성전자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부사장)이다. 이 회장의 윤리경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인물로 선택됐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부사장은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재무업무를 주로 거친 재무통이면서 올해 1월 카메라·캠코더 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부장을 맡을 정도로 능력과 추진력도 인정받았다.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점은 정 부사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측근’이라는 점이다. 정 부사장은 이 사장과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동문이자, 참모로 분류되며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 측근 인사가 그룹 감사팀장에 발탁됨으로써 그룹 후계 작업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감사 경력이 전무한데 그가 삼성그룹 부정 척결을 주도할 감사팀장에 선임됐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복귀 이후 그룹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 수장을 맡은 김순택 부회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1949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와 경북대 경제학 학사를 거쳐 지난 1972년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비서실 운영팀 상무, 경영지도팀장, 비서팀장, 경영관리팀장, 실장보좌역 부사장 등 20년 가까이 그룹 비서실에서 이 회장을 보좌하며 이 회장의 ‘또 다른 복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오너의 남자로 처음으로 꼽히는 인물로는 삼성물산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현명관씨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조직 개혁의 일환으로 그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현명관씨의 비서실장 임명은 깜짝 카드였다. 공채 출신 삼성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현명관씨는 영문도 모른 채 이건희 회장의 호출을 받고 독대한 자리에서 비서실장을 맡아달란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삼성그룹내 기반이 전혀 없었기 때문. 괜히 비서실장 자리를 맡았다가 공채 출신들에게 휘둘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적극적으로 밀어 주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면서 비서실장 자리에 앉게 됐다. 이건희 회장은 외부인 출신으로서 현명관 당시 실장이 신경영을 가장 잘 감시하고 관리할 적임자로 생각했다. 현명관 실장도 스스로 발상의 혁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재계가 이건희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옹립하려 하자 그를 대신해 전경련 상근 부회장을 맡았다. 이 회장의 믿음에 대해 충실히 보답한 사례다.

당시 현명관 실장은 이학수·배종렬 씨 등을 차장으로 김인주, 류석렬 씨 등을 팀장으로 거느렸다. 이들은 그뒤 삼성가 오너의 남자이자 주력 경영인으로 일명 9인회에 올라섰다.

◇퇴장하는 오너의 남자= 새롭게 떠오르는 남자가 있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남자도 있다. 지난 2008년 전략기획실 해체와 함께 비자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은 20년 가까이 이건희 회장을 보좌한 ‘분신’으로 통한다. 이 고문은 1982년부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 이건희 회장의 '남자들'
이 회장이 1987년 취임하면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 회장을 보좌해 왔다. 특히 이 고문은 이 회장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그룹내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이 회장과 절대적인 교감 및 신뢰가 쌓여있었다.

이 회장을 도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키웠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을 도맡아 했다. 또 이 회장을 대신해 법원 재판대에 서기도 했다. 이 회장이 깊은 애착을 보였던 삼성차를 과감히 포기하게 만든 것도 그다.

이학수 고문과 쌍두마차를 이뤘던 인물은 김인주 삼성카드 고문이다. 김인주 고문은 지난 1980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1997년 삼성 회장비서실 재무팀 이사로 발탁돼 줄곧 그룹의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그룹의 ‘곳간지기’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김 고문이 이끌었던 그룹 재무팀은 외환위기 때 전 계열사를 샅샅이 뒤져 각종 비효율과 부조리를 찾아내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지휘하면서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CJ와 신세계, 한솔 등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때에도 대주주와 계열사간 복잡하게 얽힌 지분 관계를 말끔히 정리했다.

한편 삼성전자를 10년 넘게 이끌며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르게 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1일자로 상임고문에서 물러났다. 1966년 입사한 지 45년 만에 완전히 삼성그룹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이학수·김인주 고문과 같이 이 회장의 그림자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실적으로 이 회장에게 보답해 온 또 다른 의미의 ‘오너의 남자’였다.

▲이건희 회장을 수행하고 있는 박필 비서팀장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측근= 이학수·김인주 고문, 김순택 부회장 처럼 드러나 있는 ‘오너의 남자’도 있는 반면,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오너를 그림자 처럼 보좌하는 오너의 남자도 있다. 바로 24시간 내내 이 회장을 그림자 처럼 보좌하는 비서실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

지난달 이 회장의 비서팀장으로 새로 임명된 박필 전무는 이건희 회장 수행과 의전 등 실무 영역에서 하루 24시간 ‘그림자’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거 이·김 고문 처럼 전면에 나서는 법은 없다.

삼성그룹 내에서 ‘숨은 실력자’로 통하는 박명경 삼성전자 상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여성으로써 이 회장을 그림자 처럼 보좌해왔기 때문. 박 상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에 소환되면서 부터다.

회장실 1팀을 맡았던 그는 이 회장이 부회장 때(1987~1998년)부터 비서 업무를 담당해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박 상무가 영문 이름의 앞 글자를 딴 엠케이(MK)로 통한다고 전했다. 당시 전략기획실에서 이 회장이 ‘에이’(A), 홍라희씨가 ‘에이대시’(A'), 이재용 전무가 ‘제이와이’(JY)로 불렸다는 점에서 그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주로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근무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1985년 무렵부터 삼성에 몸담은 그는 2005년 상무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2008년 당시 박 상무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410㎡(124평)형 펜트하우스 두 채(시가 100억원대)를 사 한 채로 만들어 살고 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박 상무의 ‘정체’에 물음표가 따라붙지만, 오너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존재라는 점은 명확하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그는 현재도 삼성전자에서 상무직을 맡고 있지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삼성가(家) 오너의 남자에 운전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위대식(작고)씨는 선대 회장인 고(故)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운전기사로 40년 가까이 지냈다.

위 씨는 과거 모 방송국에서 1960∼70년대 시대상을 그린 드라마를 제작했을 당시 등장인물로 나왔을 만큼 삼성가 역사의 중요 인물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단순히 운전만 하지 않는다.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수행 비서이자 삼성가의 은인이었다. 위대식 씨는 이병철 전 회장과 6·25 때 인연을 시작으로 평생 함께 했다. 한국전쟁 때 이 전 회장은 부산에 출장 중이었고 가족들은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다. 당시 위대식 씨가 이병철 전 회장의 가족을 지금의 송파구로 피난시키고 보살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졌다고 알려졌다.

그는 임원에 해당하는 수석부장(삼성물산 이사)까지 올랐으며 이 전 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위대식 씨는 삼성과 박정희 대통령 정부의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창구 역할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에 박 전 대통령의 기사(이타관 씨, 경찰 총경 계급 대우)와 이 전 회장의 기사는 같은 벤츠 차종의 운전수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40여년 전, 당시에는 벤츠 소유자가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회장 뿐이었다고 알려졌다.

위대식 씨의 묘지에 대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이병철 회장은 삼성 에버랜드 공원을 창설 당시 사후에 묻힐 가묘(지금의 이병철 회장 묘지)를 설정해뒀다. 위 씨가 먼저 사망하자 이 전 회장은 자신의 가묘 옆에 묘지를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 위 씨가 묻힌 곳은 이 전 회장 묘지에서 떨어진 에버랜드 공원 내였지만 오너의 남자로서 삼성 역사 내 그가 가진 위치를 말해주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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