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못지키는 28℃ 냉방온도 제한

입력 2010-07-26 10:19 수정 2010-08-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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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도 백화점도 은행도 '찜통'...업무능률 삶의 질 떨어뜨리며 逆효과

한여름 무더위 속에 실내 냉방 온도를 제한하는 정책의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가 정작 자신의 청사에서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온도제한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에너지 절약이라는 취지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이러한 일괄적인 온도제한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데다 업무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20일 오후 3시 30분 지경부 건물 1~7층(2층은 고용노동부 분관)에 위치한 각 부서별 냉방 중 실내 온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건물의 평균 냉방 중 온도는 26.5도를 기록했다. 공공기관 제한 온도 28도보다 1.5도 낮은 것이다. 특히 7층 실내 온도는 25~26도로 지경부 건물 전체 평균 온도보다도 훨씬 낮았다.

대형 건물의 에너지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냉방온도 제한 조치 적용 등 강력한 에너지절약 대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주무부처가 먼저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도 지키지 못할 어려운 규정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경부 건물 2층에 자리한 고용노동부 분관만이 규정 온도를 지키고 있었다. 2층의 경우 사무실 입구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규정 온도를 지키지 않는 지경부의 사무실들도 10분 정도만 지나면 더위가 느껴지는데 이곳은 더했다.

2층에서 근무하는 모 사무관은 한낮 더위에 지친 모습으로 힘없이 냉장고로 다가가 얼음물을 꺼내 먹었다. 프린터ㆍ복사기 등 전열기구로 데워진 사무실 책상에서 꾸벅꾸벅 조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과연 공무원들이 이런 환경에서 하루종일 일하며 창의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며칠 안 되기는 했지만 최근 정부정책이 부쩍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과천 청사내 공무원들은 죽을 맛이다. 공공기관은 정책을 선도한다는 취지에서 냉방 제한 온도가 다른 사무용 건물보다 더 높게 책정돼 있기 때문이다. 층별 일조량과 건물당 면적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온도 규정이어서 공무원들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실정이다.

과천청사 외부의 일반 건물에도 들러봤다.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서비스 업종은 건물전체에서 권장온도인 26도를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 내부는 후텁지근한 공기와 높은 습도로 인한 끈적끈적함으로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사 건너편 뉴코아아울렛에 만난 한 고객은 “많이 덥다”면서 손부채를 부치며 의류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2층 여성 의류 매장에서 근무하는 김모씨는 “정부의 냉방 온도 제한 때문에 매장 안이 이전보다 많이 더워졌다”며

“오후가 되면 근무복이 젖을 정도로 더워서 일하기 힘들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은행 직원들도 찜통 더위에 죽을 맛이다. N은행에 근무하는 한 은행원은 “규정 온도 제한과 과태료 때문에 눈치 보느라 에어콘을 세게 틀지도 못하고 무더위에 지친다”며 “에어콘과 가까이 있는 일부 직원을 제외하고는 집중력과 업무능률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원은 “더워서 선풍기를 틀고 싶어도 문서가 바람에 날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켜지도 못하는 상황” 이라고 열악한 업무 환경을 털어놨다.

지난 21일 3시경 서울역(기차) 온도는 바깥과 별반 차이가 없어 이곳을 찾은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부채를 부치는 할머니, 무더위에 지친 듯 졸고 있는 아저씨 등 철도 이용객 대부분이 더위에 지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사 내부는 냉방 중이었지만 온도가 29도에 달했다. 역사 외부 온도에 비해 1도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열차를 타는 곳과 도착하는 곳은 외부와 바로 연결돼 있어 더운 공기가 그대로 유입되고 있어 화기(火氣)가 느껴질 정도였다.

내부 냉방은 역사벽에 설계된 몇 개의 작은 원형개구에서만 시원한 바람이 나와 비효율적이다. 서울역 역사(부대시설 제외) 면적은 16143㎡(약 4880평)이고 유동인구가 일반 판매점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28도 온도제한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역 관계자는 “정부정책으로 보통 실외 온도가 28도가 넘을 경우에만 냉방을 가동한다”며 “역사내에 위치한 사무실도 같은 온도를 유지해 덥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름철 성수기라 하루 유동 인구가 8만~10만에 이르는데 찜통더위에 진친 일부승객들은 왜 덥냐고 종종 항의하기도 해 정부 정책이라 어쩔 수 없다 응답한다“고 밝혔다.

지경부는 지난 19일 ‘건물 냉방온도 제한조치 적용계획’에 따라 2009년 에너지사용량 2000TOE(Ton of Oil Equivalent, 석유환산톤) 이상 건물 586개를 대상으로 26일부터 내달 27일까지 냉방온도를 점검해 1차 위반시 권고 및 시정조치를 취하고 2차 위반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경부는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추진지침’에 따라 통상적으로 공공기관 건물에서 냉방 가동시 실내 온도를 28도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서비스업종의 냉방 온도는 26도, 판매시설 및 공항은 공간의 특수성을 감안해 25도로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률적인 온도 규정 강요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경부 건물은 청사 관리사무소에서 일괄적으로 냉방 가동을 하는 중앙 냉방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7~8층은 다른 층에 비해 직사광선에 많이 노출돼 더 덥기 때문에 냉방을 28도로 계속 유지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실토했다.

온도 측정 방식에 대해서는 “층별로 온도가 다르고 같은 층에서도 위치마다 온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냉방 수요가 증가하는 12시부터 4시까지 건물을 방문해 한 층에서 5곳을 선택해 세 번씩 측정하고 층을 저ㆍ중ㆍ고층별로 평균을 내어 건물당 온도를 기록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괄적인 온도 규정을 강요하는 것은 대표적인 탁상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한 건축 업계 관계자는 “공간별로 냉방부하를 고려하지 않고 실내온도를 일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건물 내 유동인구, 일조량 등을 고려해 온도 제한 조건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지경부의 한 공무원은 “지키지 못할 규정을 강요하며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업무능률과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에너지 절감효과보다 클 것”이라며 “온도 규정을 한다면 일과성 홍보성에 그치기 보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삶의 질과 업무환경을 고려하는 규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지난 19일 오는 8월 상순까지 계속되는 도시폭염에 유의하라고 권고했다. 고온에 따른 건강 피해를 방지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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