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성장 잠재력 투자" 발언 계기로 초과세수 활용 패러다임 전환
엄격한 추경 대신 '미래대응기금' 신설 및 '국부펀드' 투입 유력 검토

반도체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올해 국세수입이 두 달 전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전망치보다 최소 15조 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막대한 초과 세수가 예상됨에 따라 정부는 단순한 부채 상환을 넘어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재원 활용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1~4월 세수 164조 돌파…반도체·증시 호조 주도=14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올해 1~4월 누적 국세수입은 164조 1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조 9000억 원(15.4%) 급증했다.
이 증가율이 연말까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국세수입은 작년 실적(373조9000억원)보다 57조6000억원 늘어난 431조5000억원에 달해, 올해 4월 10일 통과된 추경 전망치(415조 4000억 원)를 16조 1000억원가량 웃돌게 된다.
현재까지의 세수 증가세가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추가 초과세수가 15조원을 상회하는 셈이다.
최근 5년 평균 4월 세수 진도율(38.6%)을 연간으로 적용하더라도 국세수입 전망은 425조 1000억원 수준으로 계산돼 추경안보다 9조7000억원이나 많은 수준이다.
다만 재경부는 이는 1~4월 세수 흐름으로 연간 세수를 추정하는 방식이라 향후 부가가치세 환급이나 법인세 중간예납 등을 고려하면 실제 세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세수 호조는 법인세, 소득세, 증권거래세가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세가 이어지며 4월까지 법인세는 작년보다 3조2000억원(8.9%) 늘어난 39조원이 걷혔다. 특히 올해 8월에는 법인세 중간예납이 예정되어 있어 기업 실적 개선분이 세수에 추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거래세도 당초 예상보다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증시 변동성 확대로 거래대금이 대폭 늘어나고 세율 인상 등의 영향이 겹치면서 1~4월 증권거래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290.9% 폭증한 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4월 한 달에만 1년 전보다 506.2% 늘어난 1조3000억 원이 걷혔다. 3월 상장주식 거래대금은 1449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배 수준으로 불어났으며, 5월 들어서는 반도체 대기업이 견인해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는 등 급등락을 오가며 거래세 증가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지난해 연간 국세수입에서 0.9%에 불과했던 증권거래세 비중이 1~4월 누계 기준 2.5%까지 확대되며, 국세수입에서 1%에도 못 미치던 소규모 세목이 세수 규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부동산 거래량 증가 및 성과상여금 증가에 힘입어 근로소득세와 양도소득세 등 소득세 역시 작년보다 5조9000억원(15.2%) 늘어난 4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주요 반도체 기업의 올해 실적에 따른 성과급은 통상 내년에 지급되는 구조이며, 고유가·고환율 장기화에 따라 소비가 둔화한다면 부가가치세 수입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하방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올해 9월경 세수 재추계를 통해 올해 국세수입 전망치를 다시 내놓을 예정이다.
◆李대통령 "성장 잠재력에 투자"…낡은 재정 공식 깬다=정부는 15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이는 초과 세수를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반적으로 세입이 예산 편성 때 전망한 것보다 많아지거나 지출이 적어 남는 세계잉여금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에 우선 쓰인다. 이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출연하고 국가 채무 상환에 쓰인 뒤, 그래도 남는 자금이 추경 재원에 활용된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또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에 투자해야 하겠다"고 밝히면서 활용 패러다임이 크게 전환됐다.
이에 재정정책 수립 및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 등 당국은 엄격한 요건과 사용처 제한을 받는 추경 대신, '미래대응기금(가칭)'을 신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현행 추경 요건은 경제 상황이 어렵거나 급변하는 경우 등 사유가 매우 제한적이다.
기금 형태로 재원을 적립하면 국회 심사 없이도 일정 비율 내에서 첨단산업 발전이나 미래 세대를 위해 신속하고 유연하게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국가재정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 등 별도의 입법 절차가 뒷받침돼야 한다.
◆추경 대신 '미래대응기금'·'한국형 국부펀드' 유력 부상=올해 하반기 출범 예정인 '한국형 국부펀드'에 초과 세수를 투입하는 방안도 비중 있게 거론된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을 벤치마킹한 이 펀드는 현세대의 자산을 장기적으로 증식해 미래 세대의 자산으로 이어주는 투자기구다.
민간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를 거쳐 투자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어서 기금에 비해 한층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정부는 보유 중인 공기업 지분이나 상속세 물납 주식 등 현물 자산을 바탕으로 약 2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이 펀드에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추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역시 최근 초과 세수와 관련 "국부펀드에도 재원으로 쟁여놓고 또 그것을 투자해서 다시 돈을 버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가려 하고 있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국부펀드는 정부 자금으로 각국 증시 등에 투자해 수익성을 높이는 성격이 강해 최근 논의되는 미래대응기금과는 다소 결이 다르며,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 및 국내 첨단산업 육성을 돕는 국민성장펀드 등과의 역할 조율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관계 당국은 초과 세수를 미래대응기금 신설과 국부펀드 투입 어느 한쪽에만 투입할지, 혹은 두 방안을 병행할지 등을 놓고 폭넓은 협의를 진행 중이다. 단기적인 경기 대응을 위한 추경이나 재정 건전성 관리 차원의 국채 상환 등의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초과 세수 활용을 위한 새로운 밑그림은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 발표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로드맵이 보다 분명해지며, 늦어도 8월 말 예산안 제출 시점에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