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한육우농장 86.4%는 기존 부지 아닌 새 부지 입지
고령농 은퇴자산 묶이고 청년농 진입비용 커져

축산업의 세대교체가 ‘빈 축사’ 앞에서 막히고 있다. 2021~2025년 문을 닫은 한우·육우(한육우) 농장 10곳 중 9곳은 다시 축사로 쓰이지 못했으며 같은 기간 새로 생긴 한육우농장 86.4%는 기존 축사가 아닌 새 부지에 들어섰다. 기존 축사가 작거나 낡은 데다 매물 정보와 가격 평가, 임대·매매 중개가 부족해 신규 농가가 활용하기 어려운 탓이다. 은퇴 농가의 자산은 묶이고 청년농의 진입 비용은 커지면서 축산업의 진입·승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1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축산업계 등에 따르면 2021~2025년 한육우 폐업농장 2만1151곳 가운데 축사로 다시 활용된 농장은 1956곳으로 활용률은 9.2%에 그쳤다. 나머지 1만9195곳은 축사로 활용되지 못한 상태로 남았다.
같은 기간 새로 생긴 한육우농장은 1만4359곳이었다. 이 중 기존 축사부지에 들어선 곳은 1956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1만2403곳(86.4%)은 신규 축사부지에 입지했다.
다른 축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육용계 폐업농장의 축사 활용률은 9.3%, 젖소는 12.1%, 산란계는 16.8%였다. 돼지는 31.6%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주요 축종 대부분에서 폐업 축사 10곳 중 8~9곳이 다시 쓰이지 못한 셈이다.
폐업 이후 축사로 활용되지 못한 농장은 주요 축종을 합쳐 2만4134곳이었다. 한육우가 1만9195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육용계 2771곳, 젖소 988곳, 돼지 843곳, 산란계 337곳 순이었다. 고령 농가가 축산업에서 빠져나가며 축사 자산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 자산이 신규 농가로 원활하게 넘어가지 못하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기존 축사는 비어가지만 신규 농가가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서 축산업 진입 비용은 더 커지고 있다. 축사를 새로 지으려면 부지 확보와 인허가, 시설 투자, 악취 민원 대응까지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가축사육 제한구역과 환경 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는 새 축사 부지를 찾는 일 자체가 신규 진입자의 큰 장벽이 된다.
청년층의 수요와 실제 시장 사이의 간극도 컸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축산 관련 학과 재학생 6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진입 예정자의 75.0%는 신축 비용 부담 때문에 기존 축사와 부지를 활용하길 원했다. 하지만 실제 신규 한육우농장의 86.4%는 기존 축사부지가 아닌 새 부지에 들어섰다. 청년농은 기존 축사를 활용하고 싶어도 매물 정보, 가격 평가, 임대·매매 중개, 세무·법률 지원이 부족해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셈이다.
축산업 진입을 준비 중인 한 청년농은 “기존 축사를 쓰면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알아보면 어디에 어떤 매물이 있는지부터 알기 어렵다”며 “시설이 낡아 분뇨 처리나 악취 기준을 맞추려면 보수비가 크게 들고, 인허가와 민원 문제까지 떠안아야 해 새 부지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고령 농가 입장에서도 축사 자산이 은퇴자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존 축산농가 설문조사에서 응답 농가의 69.7%는 후계자가 없었다. 이 중 67.9%는 후계자를 찾거나 키울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은퇴 후 농장을 제3자에게 팔겠다는 응답은 52.5%로 가장 많았지만, 실제 은퇴 후 주 소득원으로 농장 매각·임대 수입을 꼽은 비율은 13.6%에 그쳤다.
축사가 재산으로 남아 있어도 이를 팔거나 빌려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은퇴 소득으로 바뀌기 어렵다. 반대로 신규 농가는 기존 축사를 넘겨받지 못해 다시 땅을 찾고 새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문 닫는 농장과 새로 들어오려는 농장이 동시에 늘어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자본의 중복 투자와 자원 낭비가 반복되는 구조다.

폐업 축사를 모두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2021~2025년 신규 한육우농장의 농장당 평균 최대 사육 가능 마릿수는 55.5마리로, 축사로 활용되지 못한 폐업 한육우농장 평균 31.9마리의 1.74배였다. 육용계는 신규 농장 평균 규모가 미활용 폐업농장의 2.59배, 돼지는 1.65배였다. 새로 들어오는 농가가 원하는 규모와 기존 폐업 축사의 시설 수준이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폐축사를 방치하는 방식으로는 축산업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 활용 가능한 유휴 축사는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 신규 농가 진입 자원으로 돌리고, 경제성이 낮거나 민원을 유발하는 낡은 축사는 농촌공간정비사업과 연계해 철거·환원하는 방식의 선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안으로는 ‘축사은행’ 도입이 거론된다. 농지은행처럼 전국 축사 자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매도자와 매수자를 중개하며, 법률·세무 컨설팅과 표준 감정평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유휴 축사 매입·비축, 스마트축사 리모델링, 청년농 장기 저리 임대, 폐축사 철거 지원까지 결합하면 고령 농가의 은퇴와 청년 농가의 진입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축산업은 생산비 상승과 환경 규제, 악취 민원, 고령화가 동시에 겹치면서 신규 진입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금처럼 폐업 축사는 방치되고 신규 농장은 새 부지를 찾아 나서는 구조가 이어지면 농촌 공간의 난개발과 축산업 생산 기반 약화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축산업의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사람을 늘리는 대책뿐 아니라 비어 있는 축사와 새로 들어올 농가를 연결하는 자산 순환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경연 관계자는 “지금처럼 폐업 축사는 방치되고 신규 농가는 새 축사를 짓는 구조가 이어지면 축산업의 세대교체 비용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며 “축사 매매·임대 정보와 가치평가, 법률·세무 상담, 리모델링 지원을 한데 묶는 자산 순환 체계를 마련해야 고령 농가의 안정적 은퇴와 청년농의 진입을 함께 풀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