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마닐라에서 60km 가량 떨어진 앙갓댐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10여분 달리자 회색 철문이 보였다.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앙갓댐 현장 직원들의 숙소 지대다. 최장 2064년까지 앙갓댐 사업권(지분 40%)을 확보한 한국수자원공사의 특수목적법인(SPC) 앙갓하이드로파워코퍼레이션(AHC) 차량이라는 확인을 받은 후 입장했다.
경내로 들어서자 베이지색 벽과 파란 지붕의 투박한 콘크리트 건물이 줄지어 나타났다. 야외 빨랫줄에는 단색 옷가지 수십벌이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체감온도 40도 중반의 열기 속에서 수십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단번에 느껴졌다.
가장 안쪽에는 수자원공사 파견 직원 4명이 머무는 2층 건물이 있다. 이들 4명은 1400만명 규모의 마닐라시 생활용수 90%와 수도권 전력 일부를 공급하는 앙갓 수력발전댐 운영·보수·발전운영·현대화 등을 책임진다. 짧게는 4개월, 길게는 3년 가까이 일했다. 앙갓댐 사업은 현대화가 어느정도 마무리된 2024년 들어서야 흑자 전환했다. AHC가 본격적인 운영에 나선 지 10년 만이다. 특히 지난해 매출은 624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올해도 600억원대 수익이 예상된다.

이들의 숙소 1층에는 공용거실과 주방이 있다. 여기서 식사도 하고 퇴근 후 운동도 한다. 최근 본사는 직원 복지를 위해 운동기구들을 보냈다. 주변에 변변한 즐길거리나 편의시설이 없는 탓이다. 앙갓댐 인근은 현지에서도 꽤 낙후된 편이다. 대형 쇼핑몰 등 인프라가 갖춰진 마닐라 시내까진 차로 2~3시간 걸리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일에는 거의 숙소와 수력발전댐만 오간다.
2층에는 이들이 지내는 5평 남짓한 방이 4개 있다. 주거 환경은 열악하다. 김성진 AHC 댐운영팀장이 안내한 방안 화장실은 세면대 가장자리에 흙인지 녹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갈색 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했다. 김 팀장은 세면대 수전을 위로 올리며 "오늘은 깨끗한 물이 나온다"며 미소 지었다.

생활용수로는 앙갓댐 원수를 끌어쓴다. 사용에 문제는 없다지만 철저한 정수 과정은 거치지 않는다. 때문에 태풍으로 물이 역류하면 종종 흙이 섞여 나온다. 우기에는 흙탕물이 나와 샤워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물을 틀면 흙이나 녹물이 같이 나와 5분은 틀어놔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여과된 물이라 괜찮겠지, 하면서 쓰고 있다. 앙갓 물이 깨끗한 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앙갓댐이 마닐라 시민에게 공급하는 생활용수는 정수시설이 설치된 하류의 라메사댐을 거쳐간다.
미혼인 김 팀장을 제외한 박장원 AHC 사장 대행 겸 최고기술관리자(CTO) 이하 3명은 모두 '해외 주말부부'다. 금요일 밤 퇴근 후 각자의 가족이 머무는 마닐라 시내로 이동해 주말을 보내고 다음 월요일 새벽 일찍 현장으로 복귀한다. 거리는 60km에 불과하지만 교통체증이 심하고 비포장도로가 많아 실이동시간은 2~3시간 걸린다고 한다.

이들의 파견 기간은 2~3년. 가족 안전과 직결된 치안은 늘 신경쓰이는 점이다. 구민철 유지보수팀장은 "가족이 비교적 안전한 수도에서 지낸다 해도 평일에는 떨어져 있어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 아플 때가 힘들다. 한국 주말부부보다는 난도가 있는 편"이라고 했다.
다만 필리핀이 거리상 한국과 가깝고 세계공용어인 영어 문화권이라는 점은 언어 습득 측면에서 장점으로 꼽힌다. 수자원공사의 다른 해외사업지인 솔로몬제도는 비행시간만 최소 12~13시간 걸린다.
2023년 말부터 근무한 이재흥 운영팀장은 AHC 4인방 중에서도 최장근속자다. 파견 당시 7살, 5살이었던 두 아들은 10살, 8살이 됐다. 이 팀장은 "회사 일로 왔고 3년 가까이 있다 보니 고될 때도 있다"며 "댐을 운영하며 구축한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 확장 가능성을 계속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