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7000선을 넘어 8000선까지 넘보는 강세장을 거치면서 저축과 예금 중심이던 한국인의 자산 배분 공식이 바뀌고 있다. 은행에 머물던 돈이 증시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증권사 실적은 급증했고, 전통 금융의 중심이던 은행권 수익성까지 넘보는 수준에 올라섰다. 증권사들은 주식 거래 수수료 중심의 수익 구조를 넘어 자산관리(WM), 신용공여, 퇴직연금, 해외사업으로 수익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 기준 국내 10대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KB·NH·신한·메리츠·키움·하나·대신)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4조332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2조551억원보다 110.8% 급증한 규모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4조7582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10대 증권사와 5대 은행의 순이익 격차는 4262억원 수준까지 좁혀졌다. 과거 예대마진을 앞세운 은행이 금융권 이익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증시 호황을 등에 업은 증권사들이 은행권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셈이다. 은행이 못 버는게 아니라 증권사들이 너무나 잘 버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의 위상 변화가 상징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은 1분기 순이익 1조19억원을 기록하며 증권사 최초로 ‘분기 순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미래에셋증권 시가총액은 41조5758억원(12일 기준)으로, 일본 노무라홀딩스 3조8100억엔(약 35조7231억원)을 약 5조9000억원 웃돌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미래에셋증권 시총은 13조원 수준으로 노무라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주가가 201.4% 급등하며 단숨에 격차를 뒤집었다. 2016년 대우증권 인수 당시 박현주 회장이 롤모델로 삼았던 ‘일본의 노무라’를 10년 만에 넘어선 셈이다. 국내 금융권 내 시총 순위도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를 제치고 4위까지 올라섰다.
실적 급증의 배경에는 증시로 몰린 개인 자금이 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면서 거래대금이 불어났고, 이는 곧바로 증권사 브로커리지 수수료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하루 52조원(5월 기준) 규모로, 코스피 불장이 본격화하기 전인 작년 4월(하루 43조6300억원)보다 20% 증가했다.
수익 기반도 넓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2025년 증권회사 해외점포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 16곳의 해외점포 당기순이익은 4억5580만달러, 원화 기준 약 654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2억7170만달러보다 67.8% 늘어난 규모다. 이는 지난해 증권사 전체 당기순이익의 8.7%에 해당한다.
자산관리 부문에서도 은행과 증권사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과거 고액자산가 자금은 예금, 신탁, 펀드 판매를 중심으로 은행 프라이빗뱅킹(PB)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식,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랩어카운트 등 투자상품을 앞세운 증권사 WM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증권사가 은행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141조6797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0조1771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업권은 264조1205억원으로 3조5625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부문에서는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 등이 적립금 상위 10위 사업자에 포함되며 존재감을 키웠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증시가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가계자산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 가계자산은 전통적으로 비금융자산과 현금·예치금 비중이 높았지만, 증시가 본격적으로 상승한 지난해부터 금융투자상품 비중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저축과 부동산으로 대표되던 기존 자산 배분 방식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