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보다 자율·속도보다 방향”…공청회 등 충분한 숙의 요구

농협법 개정안을 둘러싼 농업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권역별 설명회를 열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지만, 참석한 조합장과 농업인들은 농산물 가격 안정, 농가소득 증대, 유통구조 개선 등 농민이 체감할 대책은 빠진 채 지배구조·감사·선거제도 개편에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과거 신용·경제사업 분리처럼 구조 중심 개혁이 비용 부담과 비효율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면서 개정안 전면 재검토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농협 자율성 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2일 대구를 시작으로 24일 충북과 경기 등 3개 권역에서 농협법 개정안 설명회를 열었고, 조합장과 농업인 등 400여명이 참석해 개정안의 방향과 추진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26일 밝혔다.
참석자들은 이번 개정안이 농업인의 삶과 직결되는 핵심 과제보다 감사구조, 선거제도, 감독권 확대 등 구조 개편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가소득 증대, 유통구조 개선 등 농민 실익을 높이는 방안이 빠진 상태에서 조직 운영 방식만 손보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개혁이라는 비판이다.
과거 농협 개혁의 대표 사례인 신용·경제사업 분리도 주요 반대 근거로 제시됐다. 참석자들은 신경분리가 1년 이상 공론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비용 증가와 효율 저하를 낳았고, 농업인이 체감한 성과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성빈 인제농협 조합장은 “신경분리 이후 조직은 확대됐지만 비용은 증가하고 조합원 실익은 오히려 줄었다”며 “구조 중심의 개편이 오히려 농협을 농업과 농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 추진 절차를 둘러싼 문제 제기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설명회가 현장 의견을 듣기보다 이미 정해진 안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보고, 중대한 법 개정인 만큼 공청회 등을 통한 충분한 의견 수렴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동조합의 자율성 훼손 우려도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헌법 제123조가 협동조합의 육성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번 개정안은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비판했다. 정부 추천 중심의 감사위원회와 감독권 확대가 농협을 사실상 정부 관리 체계에 편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경식 안산농협 조합장은 “일부 문제를 이유로 전체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입법은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개혁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정안의 방향과 우선순위는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조 개편보다 농업인 실익을 먼저 따지고, 통제 강화보다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살리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주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개혁의 출발점은 농민의 삶과 현장이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구조 개편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설명회를 계기로 현장 요구가 단순한 보완 수준을 넘어 개혁 방향 자체의 재검토로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농협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수록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와 현장의 자율성 요구가 맞서는 구도도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