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장애인 복지, 시혜를 넘어 ‘자립’과 ‘공존’을 향하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6-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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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장애인의 날 포스터. (제공=보건복지부)
▲제46회 장애인의 날 포스터. (제공=보건복지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제46회 장애인의 날 슬로건으로 “당연한 일상,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을 내걸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모습을 정책에 반영하여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흥미로운 건 이런 문제의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장애를 국가가 돌봐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단순 구휼을 넘어 사회 안에서 역할을 찾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들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이를 오늘날의 ‘장애인권’과 곧바로 등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선이 장애인을 사회 바깥으로만 밀어내지 않았다는 점은 여러 사료와 연구를 통해 확인됩니다.

장애는 ‘개인 불운’이 아니다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질병과 신체 결함의 범주 안에서 이해했습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장애인을 두고 장애 정도에 따라 ‘독질자(篤疾者·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폐질자(廢疾者·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잔질자(殘疾者·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장애를 나눈 것은 자립이 가능한 정도에 따라 각종 조세 면제와 구휼 대책 등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이처럼 조선시대에선 장애를 단순한 사적 불행으로만 두지 않고, 국가 운영의 범주 안에서 파악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국가가 장애인을 환과 고독(鰥寡孤獨·홀아비, 과부, 고아와 자식이 없는 늙은이)과 함께 우선적으로 구휼해야 할 대상으로 본 흔적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은 “환과 고독(鰥寡孤獨)과 독질자·폐질자, 실업한 백성들이 굶어 비명(非命)에 죽는 일이 없도록 한성부(漢城府)와 유후사(留後司)·오부(五部)에 널리 알려 거두어 기르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세종실록에서도 세종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과 고독(鰥寡孤獨)과 잔질(殘疾)·폐질(廢疾), 빌어먹는 자에게만은 진제(賑濟)를 주라”고 지시한 기록이 확인됩니다. 진제(賑濟)란 흉년 때 굶주린 사람에게 죽이나 곡물을 무상으로 지급하던 진휼 정책으로, 국가가 노동 가능 여부와 생활 여건을 따져 구제 대상을 나눴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정(侍丁)’이 보여준 생존권 보장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조선의 장애 관련 제도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시정(侍丁)’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시정법(侍丁法)은 부모가 독질(篤疾)·폐질(廢疾)이 있거나 70세 이상일 때 아들 또는 손자 1인을 군역에서 면제해 봉양하도록 한 제도였습니다. 부모가 90세 이상이면 모든 아들이 면제되는 등 기준도 구체적이었습니다. 단순히 당사자에게 곡식을 조금 나눠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 중 한 명이 실제 돌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가 노동 의무를 조정해준 셈이죠.

이 제도는 오늘날로 치면 ‘돌봄의 사회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돌봄이 필요한 가정의 부담을 국가가 일부 떠안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장애나 중증 질환이 있는 가족을 둔 가정이 생계와 간병 사이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일부 정책은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만 본 것이 아니라, 그를 돌보는 가족의 현실까지 행정의 문제로 끌어들였습니다.

‘먹여 살리는 복지’에서 ‘일하는 복지’로

▲독경하는 시각 장애인. (사진제공=국가인권위원회)
▲독경하는 시각 장애인. (사진제공=국가인권위원회)
조선의 장애 정책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각장애인 음악인 제도인 ‘관현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관현맹은 조선 초기 세종 때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박연의 상소 뒤 어린 시각장애인을 뽑아 음악기관의 계위에 맞춰 증원하고 사계절에 쌀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직책을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도 잡직 채용이 이뤄졌습니다. 이들은 궁중 잔치에서 연주를 맡는 등 분명한 공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선이 시각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재능과 훈련을 전제로, 궁중이라는 국가 체계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장애인 고용’이나 ‘직업 재활’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능력을 발휘해 녹봉과 생계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려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명통사...생업까지 설계했다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또 다른 사례로는 ‘명통사’가 자주 언급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명통사는 1402년 이전 설립돼 1457년 이후 사라진, 맹인들의 집회소이자 점복 교육과 기우제, 국가 안녕 기원을 맡았던 기관입니다. 태종은 1413년 명통사의 맹인들에게 쌀 30석을 지급했고, 1417년에는 건물을 개수하게 하며 노비 10명을 내려줬습니다. 세종도 1427년 쌀 30석과 황두 20석을 지급했고, 1439년에는 다시 쌀과 콩 20석씩을 지급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의례 참여를 넘어 하나의 생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복술과 독경으로 복채나 사례비를 받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종교적 성격의 직업, ‘맹인독경업’이 대표적입니다. 조선 초에는 명통사를 중심으로 맹인들의 독경과 의례 활동이 운영됐고, 국가가 기우 행사를 맡기고 쌀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독경과 점복, 축원 행위를 통해 사례비를 받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일정한 역할과 수입 구조가 연결돼 있었던 셈입니다.

‘보호’를 넘어, ‘자립’으로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갈무리. (출처=EBS 역사채널e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편 캡처)
조선의 사례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장애인을 단지 구휼의 대상으로만 묶어두지 않고, 누군가는 직접 보호하고, 누군가는 역할을 맡아 생계를 이어가도록 하는 방식이 동시에 고민됐기 때문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이에게는 시정 같은 제도를 통해 가족의 부담을 조정했고, 시각장애인 중 일부에게는 관현맹이나 명통사·맹인독경업 같은 구조를 통해 사회적 역할과 생업의 통로를 열어뒀습니다. 분명한 한계 속에서도 ‘살려두는 복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선의 장애 정책을 낭만화해서는 안 됩니다. 신분제 사회였고, 장애 유형별 처우 역시 균등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처럼 특정 역할이 제도화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구자들 역시 조선의 제도가 “현대와 세계를 뛰어넘었다”고 단정하기보다,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장애인의 생존과 자립을 일부 제도화했다는 점에 의미를 둡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거의 흔적이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지원은 늘어났지만, 우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하고 이동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갈 ‘자리’까지 충분히 만들고 있을까요.

제46회 장애인의 날 슬로건은 “당연한 일상,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입니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제도는 낡고 불완전했지만, 적어도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놓고 함께 살아갈 방식을 고민한 흔적만큼은 남겼습니다. 현대 복지의 기준은 훨씬 높아졌지만, 질문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보호를 넘어 자립으로, 시혜를 넘어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조선의 기록을 다시 꺼내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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