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독서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취미였습니다. 종이책을 펼치고 책갈피를 꽂고, 연필로 밑줄을 긋는 모습이 자연스러웠죠.
하지만 독서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는 일이 낯설지 않은데요.
이러한 변화는 매출로도 확인됩니다. 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인 밀리의서재는 지난해 매출 882억원, 영업이익 144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 영업이익은 31% 증가했는데요. 2022년 영업이익 흑자 전환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북리더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가 지난해 출시한 첫 컬러 이북리더기 ‘크레마 팔레트’는 예약판매 첫날 기준 크레마 시리즈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예약판매 기간 구매자 가운데 2030세대 비중은 54.7%에 달했죠. 당시 흑백 위주였던 이북리더기 시장에서 컬러 전자잉크를 적용한 점이 차별화 요소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에 캐릭터까지 입혀졌습니다.
예스24가 미피 생일(6월 21일)을 기념해 ‘크레마 팔레트 미피’를 출시한 건데요. 이 제품은 컬러 이북리더기 ‘크레마 팔레트’를 기반으로 제작된 한정판 에디션으로, 슬립 화면부터 배경화면, 하이라이트 표시까지 미피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미피 모습을 그대로 살린 ‘크레마 미피 파우치’도 함께 판매하고 있죠. 예약 판매는 22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며, 정식 출시는 같은 날 오후 2시입니다.

전체적인 테마 디자인과 배경화면은 물론 밑줄을 긋는 하이라이트 표시에도 미피 일러스트가 적용됐는데요. ‘크레마 팔레트 미피’는 최대 4096가지 색상을 표현하는 컬러 화면을 탑재했고, 흑백 모드 전환도 가능합니다. 기기 전면과 후면 곳곳에도 미피 디자인을 녹여냈죠.
이쯤 되면 전자기기라기보다 캐릭터 굿즈(?)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캐릭터 협업은 최근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대표적으로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는 해리포터와 짱구, 포켓몬, 산리오 등 다양한 캐릭터 IP 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캐릭터 IP 협업 제품 매출은 2022년 400억원에서 2024년 650억원으로, 2년 만에 무려 60% 이상 증가하기도 했죠.
팬덤 소비를 겨냥한 움직임은 플랫폼에서도 확인됩니다. 무신사는 3월 스포츠 구단과 캐릭터, 애니메이션 IP 상품을 한데 모은 전문관 ‘팬 스토어(FAN STORE)’를 론칭했습니다. 마블과 디즈니, 산리오 등 84개 글로벌 IP를 기반으로 약 7500개 상품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이제는 캐릭터 상품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예스24는 왜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하필 미피를 선택했을까요.

귀가 긴 흰 토끼 캐릭터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미피는 본질적으로 ‘책에서 태어난 캐릭터’입니다. 딕 브루나는 1950년대부터 미피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시리즈를 선보였고, 이후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까지 포함해 총 54권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특히 1959년 도입한 16×16㎝ 크기의 정사각형 ‘스퀘어 북(Square Book)’ 형식은 지금도 미피 그림책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피는 출판을 기반으로 성장한 뒤 애니메이션과 전시, 문구, 생활용품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2D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 시리즈를 거쳐 2015년에는 3D 애니메이션 ‘미피의 모험’으로도 확장됐는데요. 캐릭터 사업이 책을 떠나 성장한 것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넓혀온 사례에 가깝습니다.
생각해보면 독서 플랫폼과의 궁합도 자연스럽습니다. 산리오나 포켓몬처럼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는 많지만, 미피는 태생부터 출판과 독서 문화에 뿌리를 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태어난 캐릭터가 종이책을 넘어 전자책과 이북리더기라는 새로운 독서 경험 속으로 들어온 셈이죠.

분명 통계를 보면 독서는 줄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2023년보다 4.5%p 하락했고,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도 3.9권에서 2.4권으로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독서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 방식이 변화하고 있죠. 같은 조사에서 20대의 전자책 독서율은 59.4%로 종이책 독서율(45.1%)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4 독서문화 통계조사’에서도 성인 전자책 독서 경험 비율은 37.5%, 20대는 47.1%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독서를 위한 물건들이 때로는 독서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북리더기를 구매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북리더기에 쓴 돈이 아까워서라도 책을 읽게 된다”거나 “출퇴근길에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게 됐다”는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책을 덜 읽는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서를 위한 물건은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독서가 취향이 된 시대, 독서도 결국 템빨(?)인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