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진 상황에서 물가 불안까지 다시 고개를 들자 국고채 금리가 하루 만에 20bp(1bp=0.01%p) 가까이 급등했고, 그 여파는 회사채 시장으로 빠르게 번지는 분위기다. 상반기 대규모 만기를 앞둔 기업들로선 차환 부담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장중 18bp 이상 급등하는 등 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국채 금리가 이처럼 급하게 오르면 회사채 차환(신규 발행)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발행금리도 뒤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까지 선순위 무보증 회사채 만기 도래액은 36조52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조90억원)보다 10% 넘게 늘었다.
월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다음 달 공모 회사채 만기 예정액은 12조2130억원으로, 월별 기준으로는 지난해 2월 이후 최대 규모다. 시장 금리가 급등한 시점과 대규모 차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발행 여건은 더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 변동성이 진정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발행 시점을 늦추거나 공모채보다 더 높은 조달금리를 요구하는 사모사채, 메자닌 등 다른 조달 수단을 택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수요예측 시장에서는 금리 상승 압력이 이미 확인된다. 지난 5일 발행된 롯데지주 공모 회사채는 2년물과 3년물을 각각 민간채권평가기관(민평) 금리 대비 4bp, 5bp 높은 금리에 모집액을 채웠다. 코웨이도 3년물과 5년물에서 희망금리보다 높은 금리의 채권 발행(오버 발행)을 피하지 못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10년물은 민평 대비 15bp 낮은 금리에 발행됐지만, 3년물과 5년물은 각각 6bp, 5bp 높은 금리를 기록하는 등 단기 구간에서 금리 부담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지난달에는 CJ ENM, KCC글라스 등이 잇따라 오버 발행에 나섰다.
개별 기업의 신용도 변동까지 겹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여천NCC는 이달 11일 15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 만기를 맞는데, 발행 당시 A0였던 신용등급이 현재 A-까지 내려온 상태다.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이어서 추가 하향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달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이마트 2년물도 발행 당시 AA 등급이었지만, 지금은 AA-로 낮아졌다. 같은 차환이라도 예전과 같은 조건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당장 이달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인 기업들부터 시장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달에는 현대코퍼레이션(9일)과 해태제과식품(10일), 한솔테크닉스(16일), 흥국화재(17일), 현대차증권(24일) 등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을 앞둔 상태다. 통상 연초 회사채 발행이 집중되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발행 예정 기업 수는 예년보다 많지 않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모집액 기준으로는 현대차증권이 1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수요가 받쳐주면 2000억원까지 증액할 수 있다. 현대코퍼레이션과 해태제과식품도 각각 최대 600억원까지 증액할 수 있다. 이중 한솔테크닉스는 유일한 BBB+ 등급으로, 이번 수요예측 결과가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변수로 꼽힌다.
기업들은 발행 일정 자체를 늦추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채권발행시장(DCM) 업계 관계자는 “국고채 금리 급등이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상황”이라며 “상반기엔 만기 물량도 적지 않아 기업들 입장에선 발행 시기와 만기 구조를 더 보수적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