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공식 일정은 종료됐지만, 가수 지드래곤의 이름이 여전히 뜨겁습니다.
APEC 공식 홍보대사를 맡은 가수 지드래곤은 정상회의 환영 만찬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화제성을 독식했습니다. 앞선 홍보영상부터 화제가 됐죠.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한 홍보 영상에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 박지성 선수, 안성재 셰프, 아이브 장원영, DJ 페기 구 등 대한민국의 각 분야 대표가 다양한 역할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지드래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해당 영상은 4일 기준 2200만 회의 조회 수를 돌파하는 등 큰 화제를 모았죠. 지드래곤은 바쁜 월드투어 일정 속에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노개런티로 촬영에 임하는 등의 열의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 지드래곤은 지난달 31일 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 공연에 출격했는데요. 이날 공연 무대에 오른 K팝 아티스트는 그가 유일했죠. 알베르토 반 클라베렌 칠레 외교 장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등 정상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지드래곤의 무대를 촬영하며 감탄하는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드래곤은 현재 월드투어 '위버맨쉬(Übermensch)' 막바지 여정을 전개 중인 만큼 곧바로 대만 타이베이로 출국, 성황리에 앙코르 콘서트를 마쳤는데요. 거대한 공연장을 데이지 응원봉이 가득 채우면서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못한(?) 반응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름 아닌 '부럽다'는 반응이었는데요. 지드래곤이 공연을 펼친, '타이베이돔'을 향한 선망의 눈길이었죠.

지드래곤은 1~2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돔에서 '지드래곤 2025 월드투어 [위버맨쉬](G-DRAGON 2025 WORLD TOUR [Übermensch]' 앙코르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앞서 7월 중순 3일에 걸쳐 타이베이 아레나에서 공연을 열었음에도 이번 콘서트는 모두 전석 매진되면서 현지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입증했는데요. 타이베이돔에선 양일간 7만6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유례 없는 인기를 자랑했죠.
타이베이돔은 대만 최초의 돔형 경기장인데요. 2023년 정식 개장해 야구장을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문화 행사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야구 경기 시 최대 수용인원은 약 4만 석, 콘서트 개최 시엔 최대 5만90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돔형 경기장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합니다. 주 6일 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만 보더라도 먹구름이 끼면 우천 취소를 우려하고, 한여름 더위로 선수들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데요. 기온 30도 이상에서는 선수들의 반응 속도, 타격 정확도 등이 하락한다는 국내외 연구도 있죠. 날씨 영향을 받는 건 관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입장 수익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돔구장인 만큼 타이베이돔은 개관 이후 대만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는데요. 시원하게 빠진 시야,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지하철과 곧장 연결된 지하 쇼핑몰 등 인근 상업시설과 편리한 교통 인프라까지 자랑합니다.
국내에도 물론 돔구장이 있습니다. '고척돔'으로 불리는 고척 스카이돔이 국내 유일의 돔형 경기장인데요. 안타깝지만(?) 수용인원에서 타이베이돔에 한참 못 미칩니다. 야구 경기 기준 약 1만6000명, 콘서트 시 약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요. 다만 안전이나 시야 문제로 최대 2만 석 선으로 운영되곤 하죠.
고척돔은 국내 최대 실내 공연장입니다. 이에 인기 K팝 가수라면 한 번은 거쳐가는 상징적인 공연장으로도 통합니다. 문제는 프로야구 경기가 우선시 돼 대관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요. 시야 문제도 빠질 수 없죠. 고척돔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절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체험이 가능합니다. 경사가 가파른 탓에 4층은 K팝 팬들 사이 '하느님석'으로 불리곤 하는데, 야구 경기와 달리 무대를 최대한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팬들이 선호하진 않는 구조죠.

돔구장 말고 다른 공연장을 가면 되지 않냐고요?
현재 국내에서 1만 석 이상의 공연이 가능한 실내 공연장은 고척돔을 비롯해 △KSPO 돔(옛 체조경기장) △인스파이어 아레나 △잠실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인천남동체육관 5곳 정도입니다.
이 말은 곧 '대관 예약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콘서트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는 매주 주말마다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기 일쑤인데요. 대관을 위해선 최소 수개월, 길게는 1~2년 전부터 스케줄을 확정해야 하죠. 대관 심사를 무조건 통과하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체육 행사보다 더 큰 규모의 취소 위약금이나 계약금을 요구받는 사례도 흔합니다.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공연장으로는 실외 경기장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잠실주경기장은 여전히 리모델링 공사 중이고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훼손 문제로 축구 팬들과 수차례 갈등을 빚은 전적(?)이 있는 데다가 경기 일정을 고려해야 해 대관이 어렵습니다.
이에 최근에는 고양종합운동장이나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을 줄곧 활용하는데요. 지난해 12월 GTX-A 노선 개통으로 서울역에서 인근 킨텍스역까지 약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면서 접근성도 강화됐습니다. 콜드플레이, 지드래곤, 데이식스, 제이홉, 블랙핑크, 세븐틴 등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이들의 공연이 이 두 곳에서 열린 바 있죠.
다만 이들 공연장이 완벽한 대안은 아닙니다. 우선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뛰어난 음향 시설, 탁 트인 시야, 깔끔한 부대시설을 자랑하지만 K팝 팬들 사이 '위치'가 현실적인 한계로 거론됩니다. 콘서트가 끝나는 동시에 교통난이 시작돼 택시 잡기는 불가능에 가까운데요. 버스 배차 간격도 짧지 않아 셔틀 버스나 자차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조언이 나오곤 합니다.
인천문학경기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마찬가지로 프로스포츠 경기 일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문학경기장의 경우 2028년 프로야구 SSG 랜더스가 2027년 준공 예정인 청라 돔구장으로 이전하면 아레나급 공연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데요. 구체적으로 확정된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이들 실외 경기장은 접근이 편리한 편이고 규모도 수만 석으로 크지만, '날씨'라는 무시 못 할 변수가 있습니다. 3월 말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지드래곤의 단독 콘서트의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도 날씨가 언급된 바 있는데요. 당시 체감 온도는 영하 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예기치 못한 돌풍까지 불면서 무대 연출 문제로 공연이 지연됐고, 관객들은 한동안 추위에 떨어야 했죠.

K팝이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요즘이지만, 국내 대형 공연장 기근 현상은 수년째 언급되고 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등 1회 공연만으로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팝스타들의 '한국 패싱' 역시 대형 공연장이 없다는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역시 새롭지 않죠.
K팝 가수들의 투어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지난해 8월 서울을 시작으로 전 세계 34개 지역에서 54회에 걸쳐 월드투어 '도미네이트(dominATE)'를 열었는데요. 총 34개의 공연장 중 27개가 스타디움 공연장이었습니다. 한국 피날레 공연 역시 3만 석 규모의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개최했죠.
7월부터 월드투어 '디스 이즈 포(THIS IS FOR)'를 진행 중인 트와이스는 내년 6월까지 총 42개 지역에서 56회 공연을 이어갑니다. 트와이스 투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어인데요. 이미 일본 돔투어만으로 4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블랙핑크 역시 같은 달 월드투어 '데드라인(DEADLINE)'을 시작해 북미, 유럽 스타디움 투어를 지난달 마쳤습니다. 이후 대만 가오슝 내셔널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아시아 투어에 돌입했는데요. 지난달 18~19일 양일간 열린 공연 만으로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실감케 했죠.
2020년대 데뷔한 아이돌들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엔시티 위시(NCT WISH)는 3일에 걸쳐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고 2만4000여 명의 팬들과 만났습니다. 3월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팬콘서트(1만235명) 대비 2배 이상 커진 규모를 자랑했죠. 이에 앞서 7월 라이즈는 3일간의 첫 단독 콘서트로 약 3만1000명의 팬들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5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약 1만 관객을 동원한 팬콘 투어 대비 3배 확대된 규모였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구축한 이들인 만큼 공연 수요 역시 급증하는 추세지만, 해외 대비 국내 대형 공연 인프라는 아직 열악한 수준입니다. 일본은 도쿄돔, 교세라돔 5대 대형 돔구장이 수준 높은 음향 시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고요. 1만 석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경기장만 30곳에 달합니다.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국내 팬들이 티켓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요. 이는 티켓 거래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도 대형 공연장 부족 문제를 화두로 올렸습니다. 지난달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잔디 보호용 특수 매트를 도입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이 언급돼 눈길을 끌었는데요. 서울 수도권에서 5만 석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형 공간이지만, 잔디 상태 문제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의 특수매트를 도입, 음향과 조명 시설까지 보강해 'K축구·K팝의 성지'로 육성한다는 의지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2027년 서울아레나를 비롯해 청라돔(2028년), 고양 K-컬처밸리(2029년), 잠실돔(2032년) 등 전문 공연장 및 체육시설이 개관될 수 있도록 지원 방안도 모색할 방침인데요. 수도권에 4만~5만석 규모 아레나급 공연장을 새로 세우기 위해 내년부터 관련 연구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지드래곤의 APEC 만찬 공연은 큰 화제성과 함께 문화외교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공연 인프라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는데요. 특히 내년에는 방탄소년단(BTS)과 빅뱅이라는 양대산맥이 완전체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두말하지 않아도 대형 공연장이 절실한(?) 해인데요. 글로벌 영향력에 걸맞은 국내 공연 인프라 정비가 K콘텐츠 경쟁력의 다음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