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달라” ‘죽음의 방식’ 선택할 수 있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4-02-13 16:56 수정 2024-02-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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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논쟁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5일 동갑내기 부인과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현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는데요.

평소 아내를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는 등 평소 아내 사랑으로 유명했던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는 한날 한시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에서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고 있는데요. 안락사는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긴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찬·반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주제입니다. 다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사회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나는 이유에서인지 존언함 죽음 인정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2025년 한국인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1년여 앞둔 상황, 우리에게 ‘좋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홈페이지 캡처
▲출처=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홈페이지 캡처
70년 함께한 부부, 함께 죽음을 ‘선택’하다

아흐트 전 총리가 70년간 해로한 부인과 손잡고 나란히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헤라르 존크먼 권리포럼 연구소장은 네덜란드 공영 방송 NOS에 판 아흐트 부부가 모두 매우 아팠으며 “서로가 없이는 떠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도 이번 사례와 같은 동반 안락사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네덜란드는 6가지 조건 아래에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데요.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치료 가능성이 없으며,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의사를 밝혀왔는지, 의사 2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는지 등 6가지 엄격한 조건에 대한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야 합니다.

2002년 한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총 8720명으로 전체 사망의 5.1%를 차지하는데요. 안락사에 대해 법제화가 돼 있는 네덜란드는 엄격한 요건을 검토해 부부의 동반 안락사까지 허용하는 추세입니다. 이들 부부의 사례처럼 네덜란드에서 부부 동반 안락사는 2020년 26명에서 이듬해 32명, 2022년 58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안락사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지를 두고 찬반이 여전히 팽팽하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존엄하게 죽을 권리’ 빗장 푸는 유럽

존엄사가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개념이라면 안락사는 극한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병, 말기 환자에 대해 의료인의 조력으로 약물 등을 투입하는 방식인데요.

유럽에서는 스위스·벨기에 등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는 총 11개국입니다. 각국이 안락사를 대하는 방식은 크게 ‘적극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 안락사’로 나눌 수 있는데요.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고, 소극적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는 연명치료를 중단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두 제도 모두 안락사이지만 의사 조력 자살은 환자 스스로 약물을 주입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안락사와 차이가 있습니다.

안락사는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일부 국가에선 허용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국가로 안락사 희망자의 대부분은 말기 환자들입니다.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안락사도 허용되지만 모든 안락사는 지역 위원회의 엄격한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벨기에는 2003년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는데요. 2014년부터는 말기 질환과 큰 고통을 겪는 환자에 한해 나이에 관계없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2014년 6월 퀘벡주가 ‘존엄사법’을 제정했고 2년 뒤인 2016년부터는 캐나다 전역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됐습니다. 미국은 10여 개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고 스위스는 외국인의 조력 자살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국민 10명 중 8명 “안락사 허용”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는 한국 역시 품위 있는 죽음, 안락사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수명을 연장하기 보다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탓인데요.

한국은 20여 년 논쟁 끝에 2018년 2월 연명의료중단을 합법화했을 뿐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수혈 등의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의사와 가족을 처벌하지 않는데요.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하기까지의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시술을 말하는데요. 국내에서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모두 불법입니다. 의사 조력 자살은 안락사와 비슷하지만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약을 투약하는 것을 뜻합니다.

국내에서는 2018년부터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만 허용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분위기가 바탕이 돼서인지 국민의 76.3%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팀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76.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찬성 이유로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등을 들었습니다. 2016년 국민 절반 정도(50%)가 안락사를 찬성한 데 비해 1.5배 높아진 수치인데요.

최근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웰 다잉’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웰다잉법)이 제정된 이후 2023년 10월까지 누적 기준 200만 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습니다. 존엄사에 대한 긍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투데이DB)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투데이DB)
“내 삶을 포기할 기회 달라” 첫 헌재 판단 받는 ‘존엄사’

물론 안락사는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긴다는 사실 때문에 찬반 논쟁이 뜨거운 주제입니다. 국내에서는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행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가능하나 현행법상 안락사와 의사 조력자살은 모두 불법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를 허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헌법재판소가 정식으로 심판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음에도 국회가 이를 법제화하지 않은 것이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인지를 정식 심판 대상에 올리기로 한 것인데요. 지난해 12월 28일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명식(63)씨와 그를 간호해온 딸이 국내 조력사망을 허용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재가 이를 받아들여 정식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척수염 환자 이씨는 하반신이 마비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혼자 이동하는 것을 불가능하고 딸의 도움을 받으면 딸이 우리 형법상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국내에서도 비슷한 헌법소원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모두 각하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국회에서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이 발의됐으나 논의가 멈춘 상태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그 중심에는 종교계와 의료계가 있는데요.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고 돌봄이나 의료 복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락사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입니다. 죽음을 허용하기에 앞서 불충분한 의료 지원이 먼저라는 것이죠. 실제로 중앙호스피스 센터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호스피스 이용률은 호스피스 대상 질환 사망자의 21.5%에 그쳤는데요. 전문가들은 품위 있는 죽음(웰다잉)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확대 등 사회적 안전망 확대가 시급하다며 조력존엄사 입법 추진에 앞서 사회적 공론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김율리 도쿄대 박사(사생학·생명윤리전공)는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되면 애초 취지와 달리 최후 수단이 아닌 조기개입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시설,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과연 의사조력자살이 합법적으로 의료체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도 되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생명윤리센터장은 “사회적 공론화가 없는 성급한 법제화는 우리 사회 또는 국가의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인권 사각지대만을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에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 속 안락사 허용은 종교, 윤리, 의학적 문제 등이 얽혀 있어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은 사안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아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과 약물 주입 등을 통한 안락사는 엄격한 구분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스스로 삶을 마감할 권리를 가진 우리에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죽을 권리 논쟁’에 대한 헌재 판단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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