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혁신’ 외치는 기업 목소리 간과 말아야

입력 2023-10-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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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킬러 규제’ 혁파를 위한 입법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어제 5대 분야, 97개 입법과제로 간추린 건의서를 국회에 보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21대 국회를 통과한 고용노동 법안을 분석한 결과 기업친화적 법안 비율이 낮다며 기업의 기를 살릴 법안 처리에 중점을 둬달라고 건의했다.

두 단체 메시지는 표현만 다를 뿐 판박이처럼 같은 내용이다. 21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 회기마저 허비하지 말고 기업을 옥죄는 킬러 규제만이라도 제거해달라는 호소인 것이다. 대한상의는 “규제혁신 법안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달라”고 했다. 경총은 부작용 우려가 큰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등 6대 분야의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대한민국은 규제 풍년이다. ‘전봇대’, ‘대못’, ‘손톱 밑 가시’ 등을 거쳐 ‘킬러 규제’까지 등장했다. 하나같이 국가 번영, 국민 후생을 위협하는 공적이다. 다만 그 퇴치는 쉽지 않다. 기득권 이해관계와 맞물리는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5개 ‘킬러 규제’를 명시적으로 처음 언급했다. 직접 과녁을 세운 셈이다. 그런데도 관련 법률 개정은 여태껏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화평법·화관법’(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외국인고용법’(숙련 외국인력 장기근속 허용), 산업집적법·산업입지법(산업단지 규제 대폭 완화) 등이 의원 입법 형태로 국회에 계류돼 있을 뿐이다.

2021년 가입 변호사만 4000명을 확보했던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협회의 변호사 징계 때문에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가 최근에야 법무부의 징계 취소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로톡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국내 곳곳에 규제의 덫이 깔려 있다. 애견카페에 반려견과 함께 있으면 불법이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상 동물은 별도 공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간호직 공무원 1910명은 ‘의사의 지도로 시행하는 진료 보조’ 역할만 할 수 있다. 욕창 환자를 소독하거나 대소변 주머니를 갈아 주는 일도 알아서 했다가는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스타트업 규제 환경도 엄혹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0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 중 17곳은 국내에서 창업이 불가능했거나 제한됐을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 압박은 한술 더 뜬다. 관련 법제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되면 새 규제 65개가 추가된다. 10조 원을 넘기면 68개가 더 생긴다. 때론 그룹 총수까지 처벌 대상으로 엮는 규제 그물망이 수두룩하다. 살벌한 규제 공화국이다. 이 적대적 환경 속에서 사업을 키우고 청년 일자리를 일구는 기업인들이 신기할 지경이다.

한국에 규제개혁위원회가 처음 생긴 것이 1998년이다. 25년이 됐는데도 ‘규제 공화국’ 탈은 여전하다. 그 무엇보다 정치권 체질이 바뀌지 않는 탓이 크다. 이제 달라질 때도 됐다. 여야는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 회기가 저물기 전에 두 단체의 건의문이라도 한 자, 한 자 정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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