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항공 제재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도 맞대응 성격으로 자국 영공 진입을 제한하고 있어 국내 항공업계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2일 로이터통신과 항공업계 발표를 종합하면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 항공기의 EU 영공 진입을 금지했다. 이 조치에 따라 27개 EU 회원국에 개설된 러시아 국적 항공기의 노선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EU뿐 아니라 영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중립국인 스위스도 제재에 동참했다.
전 세계 항공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미국도 러시아 항공사를 상대로 자국 영공을 폐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가 소유했거나 운용하는 항공기가 미국 영공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이 빠르면 24시간 이내에 내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똑같이 맞대응 중이다. 자국 항공사의 운항을 막은 30여 개국 항공사를 대상으로 영공 진입을 불허하는 보복에 나섰다. 이 때문에 EU 회원국 소속 항공사의 한국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핀란드의 핀에어는 헬싱키∼인천 노선 운항을 6일까지 전면 취소했다. 네덜란드 KLM도 한국행 노선 운영을 임시 중단했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뮌헨∼인천 노선을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 터키와 카자흐스탄을 거치는 노선으로 변경했다. 에어프랑스도 파리∼인천 노선을 우회시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아직 러시아 항공사의 영공 진입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 역시 국내 항공사에 맞대응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우리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 동참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7개 러시아 은행, 자회사와 금융 거래를 중단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 조치도 이행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향후 대(對)러시아 제재가 강화되면 영공 통제 조처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항공업계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항공 제재를 가하면 같은 수위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항공은 주 1회(목) 인천~모스크바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당장 3일에 항공기가 뜰 예정인데, 내부적으로 운항을 지속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러시아에 여객·화물 직항편을 운항하지 않지만, 유럽으로 주 7회 떠나는 화물기가 모스크바를 경유하고 있다.
직항 노선 중단보다 더 큰 문제는 보복 조치에 따라 러시아 영공이 폐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공편은 최단 거리인 좌우로 길게 뻗은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경로로 운항하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 하늘길이 막히면 북극이나 중앙아시아로 러시아 영공 위아래를 우회해야 한다. 러시아를 우회하면 지금보다 2시간 이상이 더 소요되고, 이에 따른 연료비 부담도 커진다. 항공유 가격이 최근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며 급증하는 상황이라 항공사 입장에선 큰 악재로 작용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우회 항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는 전부 러시아 영공을 통과한다고 보면 된다”며 “러시아 영공 진입이 제한되면 연쇄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촉발한 항공 제재가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영공은 화물기를 비롯해 아시아로 향하는 많은 장거리 비행 노선의 일부”라며 “이미 코로나19로 약해진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