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대재해법 지뢰밭

입력 2022-02-28 08:27 수정 2022-02-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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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IT중소기업부장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우리 사회 일터는 안전해졌을까. 불행히도 화학공장, 제철소, 건설현장, 채석장 등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장에서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과 관련해 기업의 책임자가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도 원청에 관리 책임이 있다면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 전국의 산업 현장이 떠들썩했다.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수칙 점검에 나섰다. “처벌 1호는 되지 말자”며 작업을 중지하는 기업도 있었다. 이는 일시적 회피 효과는 있을지언정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재해는 필연적으로 재발하게 된다.

때문에 근로 환경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법 시행 이후에도 13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매일 2~3명꼴로 사망재해가 발생하던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 과연 획기적으로 재해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찬반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과도한 처벌에 대한 지적과 모호한 기준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무서운 처벌법이 아니라 재해 예방을 위해 지킬 수 있는 법이라는 해석에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의견이 여전히 갈린다. 사업주가 단지 처벌을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이 법의 실효성은 없다. 모호한 기준 또한 시급히 해결돼야 할 내용이다. 사업주의 의무사항과 면책요건을 명확히 해야 경영책임자들이 뒤로 숨지 않고 안전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다.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면책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진 법의 구성요건도 문제다. 중소기업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기업들은 앞다퉈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고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관련 컨설팅이나 노무·법률 상담조차 받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른다. 현실에서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 22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관련 컨설팅을 지원한다. 그러나 법에 적용되는 중소기업수가 2만7000여 개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하면 10%에도 못 미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기업 스스로 자기 안전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안전 예산이 부담스러운 중소기업이 안전관리를 외주화할 경우 위험이 더 커지지 않을까. 중소기업중앙회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준은 세계 최고인데, 이를 완벽히 준수할 수 있다고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포 마케팅’으로 악용돼 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대기업과 달리 재정 여력이 부족해 대형 로펌의 컨설팅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노무 전문 변호사들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에 오른 한 기업은 착수금으로만 수억 단위를 지불했는데, 중소기업들은 한 번에 그 많은 비용을 지출하기는 불가능하다. 법 시행 한 달,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제대로 된 습관과 문화가 정착할 때까지 법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상의 모든 사고를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발생하는 인재만큼은 막아야 한다. 관행적으로 엄벌만 강조하고 예방에 소홀해서는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 근로자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회적 가치다. 중대재해법은 무서운 처벌법이 아니라 재해 예방을 위해 지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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