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만감이 교차하는 곳 ‘믹스트존’은 유지돼야 할까

입력 2021-08-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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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선수 간 연결고리 vs 선수에게 정신적 압박·피로 주장 팽팽

▲올림픽 레슬링 대표 류한수가 3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남자 67kg급 16강전에서 이집트의 무함마드 엘 사예드에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 레슬링 대표 류한수가 3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남자 67kg급 16강전에서 이집트의 무함마드 엘 사예드에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종료 후 선수가 거쳐야 하는 믹스트존(혼합취재구역). 믹스트존(mixed zone)은 경기 후 선수와 취재진이 뒤엉킨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경기 직후 선수와 언론이 인터뷰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을 뜻한다.

선수에게 믹스트존은 경기를 끝마친 소회를 외부에 밝힐 수 있는 첫 번째 장소다. 언론에는 경기를 막 마친 선수의 생생한 반응을 신속하게 보도할 수 있는 주요한 취재처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믹스트존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믹스트존의 존재 자체가 선수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사실 믹스트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꾸준히 존재했다.

미 수영선수, “선수에 대한 공감 부족 문제” 믹스트존 인터뷰 작심 비판

▲미국의 수영선수 시몬 매뉴얼 (연합뉴스)
▲미국의 수영선수 시몬 매뉴얼 (연합뉴스)

미국의 수영선수 시몬 매뉴얼은 6일 트위터를 통해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친 직후, 선수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인터뷰하는 것을 제발 그만하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그것 외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매뉴얼은 ‘(패배한 선수들이)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지적하며 “선수에 대한 공감 부족이 문제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노력하던 목표달성에 실패한 것을 사람들이 이미 봤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지치게 한다”며 “선수도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봐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선수들의 삶 대부분이 공개되고 있지만, 우리의 감정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운동선수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영혼까지 내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매뉴얼은 추가로 “언론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고, 단지 선수들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뿐”이라며 “단지 인터뷰는 미뤄두고 잠시만 시간을 달라, 침묵과 상냥함이 (패배를 겪은) 그 순간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트윗을 끝맺었다.

매뉴얼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했지만,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동메달 하나를 따는 데 그쳤다.

선수에게 압박감 주는 믹스트존

▲한국 사이클 역대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 이혜진이 4일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시 이즈벨로드롬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사이클 트랙 여자 경륜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사이클 역대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 이혜진이 4일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시 이즈벨로드롬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사이클 트랙 여자 경륜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뉴얼의 지적과 같이 믹스트존 인터뷰는 선수들에게 강한 압박 요소가 된다. 승리 여부를 떠나 모든 선수가 믹스트존을 지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는 미국 체조 간판 시몬 바일스가 심리적 압박감으로 경기 도중 기권을 선언하고 다른 종목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등 선수들의 정신적 문제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선수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메달을 따는 등 성과를 만든 선수들은 기쁨과 감사를 표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대부분 믹스트존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과도한 취재 열기, 반복되는 인터뷰에 언론도 선수도 피로감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 획득이 좌절된 한국 김현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 획득이 좌절된 한국 김현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믹스트존’ 제도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믹스트존은 언론사 국적별로, 혹은 취재 우선권 별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선수들이 믹스트존을 통해 퇴장하며 원하는 취재군과 인터뷰를 나누도록 돼 있지만, 구간마다 언론사에 ‘잡혀’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취재를 기다리는 언론에도, 반복되는 인터뷰를 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일례로 야후 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육상 간판’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는 취재진의 인터뷰와 요구에 응하느라 3시간 넘게 공동취재구역에 머물러야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한겨레21 칼럼에서는 진종오가 사격 결승 경기 직후 도핑테스트를 받기 위해 음료를 많이 마셔 화장실이 급한 상태였으나, 믹스트존 취재 요청에 응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일화가 소개됐다. 같은 글에는 여자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딴 대표팀이 반복되는 세리머니와 인터뷰 요청에 지쳐갔다는 뒷이야기도 담겼다.

소통 간편성, 편안한 분위기 선호되기도

▲체조 국가대표 신재환이 2일 일본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금메달 획득 후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조 국가대표 신재환이 2일 일본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금메달 획득 후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믹스트존에도 장점은 있다. 언론에는 현장감 있고 신속한 취재를 가능케 한다. 언론별로 취재 우선권이 있긴 하지만,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언론이 선수 및 스태프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선수로서도 여타 언론 인터뷰와 같이 딱딱하지 않고, 따로 기자회견을 할 필요가 없어 간편한 언론 노출 방식이다.

이렇듯 선수들의 정신적 건강 문제와 언론-선수 간의 소통 간편성 등 장단이 존재하는 공동취재구역 존폐에 대한 논란은 매 대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언론 믹스트존 취재 관행 뒤집은 인터뷰도 등장

(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일각에서는 기존 탈락 선수들에게 행해지던 믹스트존 취재 관행을 비튼 새로운 형태의 인터뷰가 시도되기도 했다.

미국 NBC의 스트리밍플랫폼 피콕(PEACOCK)은 ‘기분 좋은 퇴장 인터뷰’라는 이름의 올림픽 인터뷰 영상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영상 속 진행자는 “기존 인터뷰는 믹스트존에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아느냐?’ 같은 무거운 질문을 한다”며 기존 인터뷰를 비판했다.

이어 “나는 선수들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며 선수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도쿄올림픽 비치발리볼 대회에서 탈락한 선수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했는지 아는가?’, ‘당신의 경기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이 내 마음속에서 1등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등 질문을 빙자한 위로와 격려를 쏟아냈다.

영상은 ‘기분이 좋아졌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선수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끝난다. 해당 영상은 35만이 넘는 조회 수와 8800개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호평받았다. 뉴욕 타임스 등 외신은 새로운 형태의 믹스트존 인터뷰에 “올림픽에 새로운 흥미 요소를 만들었다”, “믹스트존 인터뷰에 반전을 더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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